그래서 저를 내버려 두고 다른 밴드 멤버들과 떠나버렸던 제 파트너 버나드에게 전화했습니다. 저는 콘셉트를 이렇게 잡았어요. “음악에서 완전한 예술적 경험으로의 몰입” 하지만 이 점을 아셔야 돼요. 제가 훵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뼛속까지 히피였거든요. 그래서 버나드에게 전화를 하고 찾아갔죠. (차분한 히피 목소리로) “어, 버나드, 친구야, 있잖아, 나는 방금 음악을 통해 완전한 예술적 경험으로의 몰입을 체험했어.” 그러니까 그 친구가 저를 보더니 “이 깜둥이 새끼가 무슨 개소리야?” 이럽디다. (히피 목소리로) “아니야, 친구.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방금 봤어. 믿을 수 없이 놀라운 경험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이걸 흑인 버전으로 만들어야 해. 알았지? 우리 뭐부터 할까?”
우리는 그때 빅애플 밴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고 계속 그 이름을 쓰기로 했었어요. 우리 학교 출신의 한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연주자들이요. 그 친구는 월터 머피라고 굉장한 작곡가였지요. (역자 주 – 월터 머피는 나일, 버나드와 함께 52년생으로 맨해튼 음대 출신이다.) 그 친구가 판을 하나 냈는데 “베토벤 제 5번 교향곡 (운명)”이었습니다.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디스코로 만든 거죠.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 나와요. 그래서 밴드 멤버들은 다들 우리는 빅애플 밴드다,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그 이름을 쓰려고 했었죠. “그래, 우리 모두 해냈어! ‘5번 교향곡’이라 아주 마음에 들어. 우리는 월터 머피와 빅애플 밴드야.” 다들 이랬습니다. 그런데 우리 두 사람은 “그래도 아니지, 그건 우리의 빅애플 밴드는 아니지.” 그래서 버나드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이봐, 친구. 뭐 음악에서 완전히 예술적으로 몰입한다며? 그럼 ‘쉬크’라는 이름은 어때?” 저하고 당시 우리 드러머였던 토니 (톰슨)는 웃으면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어요. 웃음을 못 참겠더라고요. 진짜 쉬크는 듣던 중 가장 병신 같은 이름이었어요. 우리가 월터 머피와 빅애플 밴드라는 이름을 떠올리기 전까지는요. 어쨌든 이름은 바꿔야 했죠.
그래서 소피스토훵크 밴드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녔죠. 팔리아먼트나 게토 보이즈나 다른 밴드들을 보세요. 모두가 자신이 맡은 역할과 캐릭터가 있거든요. 우리는 쉬크라고 하는 우리가 방금 만들어낸 소피스토훵크를 대변할 사람들을 채용하러 다녔습니다. 그때 우리는 아직 음악은 만들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라벨 (LaBelle, 역자 주 - 패티 라벨, 노나 헨드릭스, 새라 대쉬의 3인조 여성 밴드)과 잠시 함께 하다 그만 둔 토니 톰슨이라는 드러머를 구했어요. 라벨 그 친구들은 일종의 판타지 훵크 퓨전 풍의 음악을 했는데, (토니에 대해) 이렇게 얘기해주었습니다. “좋아, 오빠들. 토니 오빠 잘해. 괜찮을 거야.” 그 다음에 롭 사비노를 채용했습니다. 그 친구는 키스라는 밴드에 푹 빠져 있었어요. 당시 키스는 레코드 계약도 맺지 않은 상태였는데 롭이 그 사람들을 보러 가자더군요. 그런데 우리 버나드 씨는 천생 R&B 샌님이었고, “완전히 몰입적인 예술 경험이라는 게 아직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친구야.” 이러고 있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키스를 보게 됐죠. 온 몸에 유광 페인트를 바르고 높다란 통굽 부츠에 그 혓바닥하며 피(血)하며. 그 친구들은 뉴욕 펑크 신을 주름잡았고 관객들을 사로잡았어요. (punk, 역자 주 – funk는 훵크로, punk는 펑크로 번역한다. 훵크는 알다시피 흑인음악이고 펑크는 록 음악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아마추어리즘을 신봉하는 록 사조다.) 팬들을 아주 환장하게 만들었죠.
저는 너무 기뻤어요. 버나드에게 그런 예술적 경험의 예를 보여줄 수 있어서요. 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레코드 계약도 못 따낸 아티스트인데도 완전히 독특하고 완전히 독창적이라는 게 뭔지 다들 봤지? 쟤네들은 팬 층이 두터워. 쟤네들 하는 걸 보라고. 난 우리도 저랬으면 좋겠어.” 그래서 우리는 키스의 신비함과 그 스타일, 록시 뮤직의 세련된 뭔가를 뒤섞어서 흑인 버전으로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버나드가 다시 그러더군요. “아니 그럼 쉬크라는 이름을 쓰면 안 되나?” 그래서 토니와 제가 대답했어요. “그래 좋아, 그럼 쉬크라고 하지 뭐.”
쉬크.
(1977년에) 저는 쉬크의 첫 노래를 썼어요. 제목은 “Everybody Dance”였어요. 처음 멤버들 앞에서 연주했을 때가 계속 생각나는데요. 버나드가 리허설을 하러 돌아왔을 때, 곡의 일부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리 노래는 꽤 세련됐어요. 통상적인 R&B와는 달랐습니다. 아주 재즈스러운 코드 변화를 갖고 있었거든요. (멜로디를 허밍으로 따라 부르면서)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모두 춤을 춰. 두룻두루 박수를 쳐, 박수 쳐.” 제 파트너 버나드가 “이봐 친구야.” 이래요. (시비를 걸까 봐) 제가 한껏 방어적인 태도로 그랬죠. “왜 그러는데?”. 그러자 버나드가 “곡은 괜찮아. 그런데 X발 도대체 두룻두루는 뭐야?” (웃음) 그래서 “랄랄랄라 같은거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버나드가 “그러면 모두 ‘모두 춤을 춰. 랄랄랄라 박수를 쳐. 박수 쳐.’ 이러면 되잖아.” 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너 요새 노래 안 들어봤니? 요새 누가 ‘랄라’ 그러면서 노래를 해. 다들 <소울 트레인> 주제가처럼 ‘두두두룻두루’ 그러지. ‘랄랄랄라’는 이제 안 돼. ‘두룻두루’라고 할 거야. 그러니까 그만 좀 씨부리고 ‘두룻두루 박수를 쳐’로 하란 말이야!” 당시 우리는 루서 밴드로스의 연주를 맡고 있었어요. 루서가 라디오 시티에서 공연하던 날 밤에 “Everybody Dance”를 녹음했습니다. 만드는 데 10달러가 들었죠. 루서와 그 친구 밴드에 있던 모두가 공짜로 곡에 참여해줬습니다. 우리 모두 그 친구 백업 밴드였으니까요. 스튜디오에 들어갔는데, 그 10달러는 사실 엔지니어에게 준 돈이 아니었습니다. 스튜디오가 문 닫고 난 뒤, 사장 몰래 안으로 들여보내는 조건으로 관리인 (elevator man)에게 준 팁이었죠. 루서 밴드로스가 보컬 편성을 가르쳐줬고 그게 저희의 명실상부한 첫 녹음이었습니다. 그때는 녹음을 집에 가져갈 카세트도 없었고요 유일한 방법은 아세테이트 판 (역자 주 – LP 형식으로 된 프레스가 간편하게 되어있는 간이 음반 형태로 DJ들이 애용했다.)으로 찍어가지고 가는 거였습니다. 돈도 전혀 없었으니까 노래를 연주하면서 조정실에서 스튜디오가 끝나는 시간까지 듣고 또 듣고 했죠.
(201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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