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과 스탭들의 노고에는 응당 경의를 표하지만 재미를 위한 무례함에 양해를 구합니다.
5점 : 내가 인정하고 하늘이 인정하고 땅이 인정하는 걸작
4점 : 내 인생의 영화, 나만의 컬트 클래식
3점 : 재미있고 추천할 만한 영화, 최고!
2점 : 졸작. 보겠다는 사람 억지로 말리지는 않음. 남들은 재밌다 하지만 난 좀 그런 영화
1점 : 기본기부터 다시 배워야 할 영화 혹은 인종주의, 제국주의, 서구중심주의에 찌들어서 좋은 세상에서는 보지 말아야 할 영화
23. 건축학 개론
파업 퀴즈쇼에 당첨되어 보게 된 영화. 문화 대통령 서태지께서 좌파 대척결을 하시고 포스트모던 반공청년들이 캠퍼스를 점거하던 엄혹한 시기를 다루었다. 고매하신 영화 평론가들은 어떻게 평가할런지 모르겠으나 나의 개인적인 평가는 후하다. 탁월하지는 않아도 따뜻한 영화같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서 다루지 않고 과거만을 다뤘다면, 페니 마샬의 <빅>처럼 아련한 느낌을 안겨주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에서는 찌질했던 남자와 찌질해진 여자가 만나면서, 시간이 유독 여성에게만 가혹하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보편적인 듯 보였던 시간에 작용하는 사회적 힘에 대해 깨닫게 만든다. X세대 시절의 추억을 소품을 사용해서 디테일하게 살려놓았고 아기자기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영화의 주제는 '건축'이다. 건축의 본령은 첫사랑의 의미와 공명하듯이, 이내 소멸해버리는 가치에 대한 애도,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제는 소멸해버릴 가치에 대한 애착이라는 것. 결국 극중 서연이 승민의 설계안을 쉽게 승인하지 않았던 것도 첫사랑과 오래 있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만이 아니라, 어쩌면 감독이 건축가가 진정코 깨달아야 할 가치들을 건축학도가 전하는 첫사랑의 추억과 함께 전달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승민의 첫 건축과 첫 사랑은 하나로 이어진다. 건축과 사랑은 위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며, 항상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만든다. 각설하고, 공정하고 민주적인 방송을 위해 투쟁하는 문화방송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훌륭하신 감독님이 만들었으므로... 3.5/5점
24. 하울링
<더티해리3 - 집행자>와 비슷한 구도로 능력도 있고 의지도 탁월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교통경찰 노릇을 해야하는 신참 여경과 일에 찌든 고참 남자 형사가 티격태격하면서 범인을 잡아간다. 은근한 로맨스도 있고 재미있지만, 촌스럽달까 상투적이랄까 조금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이 아쉽다. 3/5점
25. 아이언 스카이
한 마디로 괴작. 나치 제복에 페티쉬가 있는 사람에게만 추천할 만한 영화다. 2/5점
26. 두개의 문
끔찍한 다큐였다. 용산 참사가 난 뒤에도 국민적 저항이 없자, 이명박 정권이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는 얘기는 더욱 끔찍했다. 해외 다큐에 견줄만큼 퀄리티도 뛰어났고 자료 조사도 철저했다. 세입자들의 저항에는 어떠한 원인이 있는가, 누가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들이 빠져있는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이 다큐멘터리에 바래서는 안된다. 그것은 <PD수첩>의 몫이니까...3/5점
27. 프로스트 vs. 닉슨
조지 W. 부시가 등장하기 전까지 닉슨은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레이건같은 재치도 없었고 조지 H 부시같이 제국주의 전쟁에서 승전보를 날린 적도 없었다. TV가 등장하자 음울한 인상이 부각되어 케네디에게 패배했고, 케네디 사후에 대권을 잡았지만 상대 정당인 민주당사를 도청하려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사임한다. 각종 쇼에서 퇴물 취급을 받던 프로스트는 닉슨과의 인터뷰를 자신의 명예에 대한 반전의 계기로 삼고, 닉슨도 꺼져가는 정치 생명을 프로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되살리려 한다. 결국 막다른 골목에 처한 두 인물이 말과 말을 무기로 맞붙는다. '인터뷰'라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것도 상대가 노회한 정치인이라면, 이것은 흔치 않은 경험일 뿐더러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TV 인터뷰의 특성이 무엇인지,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싶은 언론인과 지망생들에게 권할 만한 영화다. 앨런 파큘라 3부작 <대통령의 사람들>과 함께 보면 좋다. 4/5점
28. 브이 포 벤데타
이 영화를 보게 만든 것은 앨런 무어의 그래픽 노블이 아니고, 8할이 이명박이다. 가이 폭스 가면을 너도나도 쓰고 나와서 도대체 이게 뭔가 하고 찾아보게 되었다. 재미있을 사람도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쾌걸 조로"에 단련된 사람에게는 이런 스토리는 지겹기 그지없다. 게다가 일부 좌파들의 시각, 특히 국가 권력을 억압으로만 보려고 하는 시각은 더욱 문제다. 이런 망상은 특히나 영국 좌파들에게 두드러지는 것 같다. 대처가 복지를 '영국병'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이런 시각이야말로 '영국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2.5/5점
29. 다크 나이트 라이즈
재미있다. 3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뛰어난 연기파 배우들, 크리스토퍼 놀란의 탁월한 연출, 액션, 메카닉 등 어느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는 최고의 오락 영화다. 혹자는 여기에 IT기술로 무장한 베인과 함께 봉기한 사람들의 모습이 월스트리트 시위의 은유라고 하는데, 그렇게 본다면 영락없는 수구보수 선전물이 된다. 특히 자유주의 좌파의 돈줄인 IT를 꺼림칙하게 보거나, 노동대중의 자발적 봉기를 누군가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좀비의 난동으로 보는 수구보수 세력의 시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크리스토퍼 놀란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이어 공화당의 사랑을 듬뿍 받는 감독으로 거듭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끝나면 "이 세상은 착한 자본가가 다스려야 하는구나, 대안은 결국 안철수인가?"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 기나긴 영화지만 또 보라면 볼 수 있을 듯.3.5/5점
30. 늑대의 후예들
유명한 '제보당의 늑대' 사건을 각색한 프랑스 오락 영화. <크라잉 프리맨>의 마크 다카스코스가 반갑고, 그게 전부일 뿐. 카메라 지랄만 안 한다면 참고 봤을 텐데 역시나 헐리웃 영화는 중간이라도 가지 프랑스 영화가 삐딱선을 타면 대책이 없다. 화려하고 세련된 앵글과 샷을 자랑하지만 스토리는 임권택이 영화배우던 시절의 방화 수준.2/5점.
(201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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