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ca

검귀 (Genki, 1965)

Baron Samdi 2016. 6. 28. 16:26

어제 잠들기 전에 본 미스미 겐지 감독의 <검귀>는 1965년 작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련된 영상미를 선보이고 있다. 미스미 겐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미장센과 조명, 앵글 설정에서 탁월한 통제력을 보여준다. 저번에 본 장철 감독의 <13인의 무사>가 엉망인 촬영과 말도 안 되는 편집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을 보여주었다면, <검귀>는 샷 하나하나가 작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탁월하기에, 가히 고바야시 마사키의 <괴담> 등에 필적할 만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영화로운 일본의 60년대!) <13인의 무사>가 홍상수 감독 식으로 현장에서 일어나는 분위기에 맞게 연출을 맞춰갔다면 <검귀>는 스위스 시계와 같이 샷 하나하나가 정밀하게 조립되어 있다. 불민하나마 영상 제작의 경험이 있는 입장에서 보면 후자인 <검귀> 쪽이  연출 면에서 더욱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무엇을 촬영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감독이 이미 전체를 장악하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다시 태어나 영화 연출의 기회가 생긴다면 꼭 리메이크해보고 싶은 영화다. 당연히 원작만은 못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욕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검귀>는 내러티브 면에서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아니 <검귀>의 헐리우드 리메이크 판이 <폭력의 역사>가 아닐까 할 정도다. 주인공 이누코 한페이는 비천한 신분으로 주변 사람들의 놀림을 받으며 정원사 일을 하지만 우연히 배운 거합술을 통해 번 최고의 자객으로 거듭난다. 어느 날 한페이가 살인자라는 소문이 퍼지자, 한페이를 사모하는 사키는 한페이처럼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람을 죽일 리 없다며 소문을 일축한다. 내게는 그 대사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꽃을 가꾸는 자”와 “사람을 죽이는 자”라... 이 영화는 ‘보전’과 ‘폭력’의 이율배반적 모순을 통해, 그리고 폭력이 더 큰 폭력을 불러 온다는 폭력의 연쇄를 통해 이 영화는 폭력의 기원을 따져 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찌 생각해보면 “보전”과 “폭력”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보전의 대상은 가정이 될 수도 있고, 한 마을이 될 수도 있고, 더 크게는 국가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인가 대상을 ‘잘’ 보전하려는 욕망은 그 욕망을 해하려는, 혹은 해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믿어지는 타자의 욕망과 충돌하게 될 때, 이를 해소하는 방편으로 발현된다. 얼마 전 일기에도 썼듯이, 가정에 충실하게 가꾸려는 사람이 타인에게는 더욱 악마적일 수 있다. 일례로 자식에게 지위나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못할 짓을 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지키려는 욕망은 무언가 해하려는 욕망과 일치한다. 흔히 폭력은 비이성적으로 생각되지만, 대부분은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행위인데, 짱에게 선빵을 날리지 않듯이 힘의 우위를 정확히 인지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만드는 것이 두려움, 즉 공포다. 보전하려는 대상(자신의 생명이나 재산,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잃을 수도 있다는 데서 나오는 두려움. 이렇게 싸우다가 언젠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한페이의 대사처럼 힘의 우위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폭력에는 항시 공포와 불안이 뒤따른다. 폭력은 타인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그 두려운 마음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바로 폭력을 사용하는 ‘나’의 공포, 즉 보전하려는 대상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데서 발원하는 그 공포라는 점에서 폭력과 공포는 항상 겹쌍을 이루고 있다. 

모시는 다이묘가 미쳐 버리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에도로 사자들이 떠나지만 번의 경계를 넘기도 전에 모두 한페이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다이묘가 미쳤다는 사실을 쇼군이 알게 되면, 다이묘의 지위를 빼앗기게 되니 말이다. 여기서 한페이가 집착하는 것은 자신이 모시는 다이묘의 지위, 번의 안정 그리고 한미한 자신을 암살자로 거듭나게 한 상급 사무라이의 인정이다. 그렇기에 한페이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칼을 거두지 못한다. 한페이 역을 맡은 배우는 다이에이 영화사의 스타이자 가부키 배우이기도 했던 8대 이치가와 라이조다. 예명도 가부키 배역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젊은 나이에 아깝게 요절했다. (사망 원인은 잘 모르겠는데 아시는 분이 있으면 알려주시길..) 지적이면서 부드러운 이미지가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가츠 신타로의 우락부락함과 대조를 보인다. 어디서 낯이 익다 했더니 미조구치 겐지의 <신 헤이케 이야기>에서 젊은 타이라노 기요모리 역할을 맡은 배우였다.

(20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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