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ca

2015년 영화 리스트 - 2

Baron Samdi 2016. 6. 29. 10:42

8. 붉은 모란

 

최동훈이 <타짜>에서 선보인 도박장 시퀀스는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 받은 영향이 크다. 일반적인 찬바라 영화들과 다를 바 없는데, <수라설희> 시리즈처럼 칼을 쓰는 여성이 주인공이고 메이지 시대의 도박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좀 다르다. 하지만 일본 영화의 팬이 아니라면 그다지 재미있을 만한 영화는 아니다. 그나저나 젊은 시절의 다카쿠라 켄이 저렇게 잘 생겼을 줄이야.

(★★☆)


 

9. 애나벨

 

<컨저링>의 완벽함에 감동을 받아 이어서 본 그 프리퀄 격인 영화인데, 피가 튀고 살점이 찢기는 혐오스런 서구 호러와는 다른 형식이라 볼만 하다. 다만 스토리라인이 엉성해서 몰입을 방해한다. 심지어는 <컨저링>의 성공의 힘입어 제작사에서 졸속으로 마련한 속편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인데 제임스 완이 제작으로 참여한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

 

10. MR73

 

불란서 불뽕에 취한 사람들이나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총체적으로 영화적인 재앙이라고 할 만하다. 아마추어 수준의 각본에 과장된 연기를 덮는 감각적인 촬영만 강조된 졸작이다. 이 영화를 보기에는 봐야할 좋은 영화들이 훨씬 많다.

(★☆)

 

11. 아메리칸 스나이퍼

 

여러 가지 논란을 빚은 영화이지만 이 영화의 재미마저 폄훼할 의도는 없다. 잘 만든 스나이퍼 소재의 전쟁 영화이고 연출 또한 무난하다고 본다. 오히려 이 영화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옹호하는 영화니 어쩌니 하는 일각의 평가는 보류해두고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이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 카일은 미국 내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계층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텍사스 카우보이에게서 인간의 보편적인 고뇌를 읽어낸다든가 하는 일은 조금 변태적인 취향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를 떠올렸다. 둘 다 미국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영화이다. 일례로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에서는 터키 인들의 말에 자막이 없다. 그럼으로써 주인공의 막막함을 더욱 부각시키되, 터키 인들은 외딴 땅에 내던져진 미국인의 불안감을 배가시킨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 묘사된 무슬림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협조적인 무슬림과 영어를 하지 않고 잔악한 무슬림 둘 뿐이다. 단선적인 구도 설정은 관객들의 이해를 돕되, 관객들의 이해를 고양시키지는 않는다. 현대판 <람보> 같은 영화로 단순한 오락 영화 이상의 평가를 내리고 싶지는 않다.

(★★★)

 

12. 미스트

 

암 유발 광신도 아주머니로 유명해진 영화. 일반적인 괴수물과는 다르게 고립된 공간에서의 공포를 다루고 있다. 어찌 보면 같은 스티븐 킹 원작의 <언더 더 돔>하고도 비슷한 설정인 듯한데, 공동의 위협이 사람 간의 관계를 공고히 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그러한 위협 앞에서 지리멸렬하는 인간 군상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네이버 무비에서 평가가 극단을 달리고 있다. 혹평 섞인 리뷰를 읽어보면 대부분의 괴수 영화나 공포물이 그렇듯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얘기, 엔딩이 뭐 그렇더냐는 얘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네이버 무비의 평점은 참고만 할뿐 신뢰할 만한 지표는 못 된다. 예전에 NBA에서 중국인들의 몰표로 야오밍이 올스타 투표에서 1위를 했듯이, 사랑의 교회 목사의 삶을 다룬 <제자 옥한흠> 같은 영화가 10점 만점을 받기도 하는 곳이니 말이다. (그 영화를 보지 않아서 정당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주님의 은총인지 그 영화는 왠지 보지 않고도 내용을 알 것만 같다.) 프랭크 다라본트는 원래 영화 경력을 스티븐 킹의 단편을 영화화하면서 시작했다고 하며,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처럼 스티븐 킹의 의도대로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스티븐 킹에게서 욕을 먹은 감독은 <샤이닝>의 스탠리 큐브릭인데, 외려 큐브릭이 스티븐 킹의 어정쩡한 원작을 걸작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나 또한 동감하는 바이고. 글과 영상은 다른 분야니까) 어쨌든 괴수물을 소재로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드는 수작이며 근작임에도 <환상특급>과 같이 80년대 TV/ 영화의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좋게 평가하고 싶다.

(★★★★)

 

13. 버드맨

 

꽃에서 김치 냄새가 난다는 대사로 논란을 빚은 영화이기도 하고 플로베르나 롤랑 바르트를 인용하는 현학적인 면모 때문에 이 영화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버드맨>은 내가 올해에 지금껏 본 영화 가운데서 가장 좋았다. 마이클 키튼이 팀 버튼의 <배트맨>에 출연한 것이 어쩌면 이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이 영화는 존 카사베츠의 영화 <오프닝 나이트>와도 비슷한데, 각본이 뛰어나거니와 더욱 놀라운 것은 영화의 시퀀스들이 정교하게 조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감독이 원 테이크 촬영을 선호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 영화의 성격, 즉 연극을 소재로 한 영화이자 마치 <오프닝 나이트>의 선례처럼 영화와 연극의 성격을 뒤바꾸어 놓으려는 의도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길게 원 테이크로 촬영해 편집을 하게 되면 배우들은 그만큼의 더 많은 대사를 소화해야 한다. 마치 연극처럼. 또한 촬영이 진행되는 순간에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중간에 타악기 주자나 밴드의 행진 등 역동적인 장면이 들어간다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촬영에 많은 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는데, 이를 감수하고서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비평가와 창작자 간의 갈등, 연극과 영화 혹은 대중 영화와 예술 영화 간의 관계 등을 뒤엎어버리는 굉장히 독특한 영화다. 구로자와 아키라가 영화는 영상 곱하기 음향이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였을까? 아무래도 음향이나 음악이 영상에 미치는 효과가 심대하며 좋은 음향 혹은 음악이 사용되었을 경우 영상의 효과는 배가된다는 말을 이렇듯 쉽게 표현한 것 같다. 그 말을 곱씹어보면 그 적확한 실례로 이 영화만한 것이 없다. 영화를 그저 즐기고 평가하는 사람들보다 직접 영화를 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영화.

(★★★★★)

 

14. 악령의 관

 

내 이글루스 별칭 (Baronsamdi, 부두교의 주술사) 때문에 보게 된 웨스 크레이븐의 88년작. 좀비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지 로메로 풍의 좀비물이 아니라 좀비에 대한 다큐멘터리적 접근이랄까 전자가 사람들에 대한 좀비들의 습격을 그렸다면 이 영화에서는 부두 교의 비술과 (웨스 크레이븐답지 않게) 아이티의 사회적 상황 같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 해외 토픽 란에 실린 사례, 예컨대 어떤 사람이 죽었다 살아났는데 마을 주술사의 음모였다든가 하는 이야기들과 듀발리에 부자의 독재로 인한 아이티 사회의 억압적인 분위기들, 또 주술에 쓰이는 화합물에 대한 다국적 제약회사의 탐욕 등이 갈피를 못 잡고 뒤섞여 있는 것 같다. 특수 효과는 지금 시각으로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수준이고 또 호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긴장감 없는 전개 등 재미없는 영화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소재에 대한 진지한 접근, 참신한 소재 때문에 최악의 평가는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리스트는 하반기에 몰아서 올리겠습니다.

 

(201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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