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ca

2015년 영화 리스트 - 3

Baron Samdi 2016. 6. 29. 10:47
15. 파울 볼


김성근 감독과 고양 원더스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원더스의 해체를 소재로 하고 있다. 어쩌면 이현세 원작 <공포의 외인구단>의 아주 현실적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량 미숙으로, 혹은 부상으로 인한 불운이나 노쇠화 등으로 프로야구 무대에 서지 못한 갖가지 사연을 지닌 선수들과 선수들을 지옥 훈련으로 몰아넣어 성과를 내기로 유명한 감독이 만나면 드라마가 나오지 않을래야 나오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다큐멘터리가 더욱 잘 됐다고 보는 이유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김성근 감독의 야구관이나 스타일을 소략하고 원더스의 행보에만 집중해서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첫째요, 갖가지 기구한 사연을 지닌 선수들의 사연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몇몇 선수들에게만 집중에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을 보여줬다는 것이 그 둘째다.

쉽게 말해 정돈이 매우 잘 된 다큐다. 영상물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렇게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도 부기해두고 싶다. 다만 원더스의 선수들이 프로야구 구단에 콜업될 때 오디오를 모두 소거하여 묵음으로 보여줬는데, 이 점은 매우 아쉽다. <성문종합영어>처럼 체계적으로 정비된 영상 문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려는 바는 아니지만 마치 투수와 포수의 약속처럼, 영상물에는 제작자와 관객 간에 존재하는 암묵의 규약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나 다큐를 볼 때, 제작자의 의도를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제작자가 표현의 욕구에만 집중할 때, 관객들은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야구에서 소위 폭투와 같은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되돌아가서 원더스 선수들이 2군이나마 프로야구 구단과 사인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이런 부분에서는 진부하기는 하지만 경쾌한 음악을 사용해서 흥을 돋워야 한다. 음악과 음향과 같은 오디오 트랙을 소거하는 방식은 대개 주인공이 처한 막막함이나 대상을 미지의 존재로 그려낼 때 사용한다. 일례로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버스 바깥으로 몸을 내밀고 바람을 맞는 장면을 슬로우 모션 처리하면서 오디오를 다 소거해 놓았는데, 이는 조커라는 미지의 악을 부각시키는, 그리하여 조커라는 악인이 지닌 심연의 정서를, 또한 이런 악을 처리할 수 없는 주인공 배트맨의 막막함을 표현하려 한 의도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다큐를 보게 되면 청각 장애인 박병우 선수의 등장 부분에서 울컥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기술하지는 않겠지만 매우 중요한 상황에서 청각 장애인으로서 맡을 수 밖에 없는 역할은 원더스의 해체라는 사건의 비극성을 증폭시킨다.

(★★★)



16. 킹스맨


올드 훵크/ 디스코 팬으로서 TV나 라디오에서 'KC앤드 더 선샤인 밴드'의 곡이 흘러나와 무척 반가웠다. 내가 모르는 새에 소울/훵크 팬이 많이 늘었다고 기뻐했는데 착각은 잠시 뿐, 그게 다 <킹스맨>때문이었다. 고급 브랜드로 무장한 스파이물이라고 해서 나는 처음에 한국에서 이 영화가 흥행한 주요 요인이 외양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의 속물근성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니 <킹스맨>이야말로 정말 눈을 뗄 수 없는 스토리라인과 매력을 지닌 영화임을 깨달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극장에서 1시간 앉아있기도 힘들어하는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 같은 사람도 단숨에 영화의 종막까지 쉬지 않고 볼 정도로 재미있다. 어쩌면 <해리 포터>와도 비슷한, <해리 포터>의 성인판이라고 할 만하다. (나는 <해리 포터>는 매우 재미없게 봤다.) 이 영화에서 버디 무비의 변천사를 보게 된다. 원래 버디 무비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두 주인공이 이끌어 나가다가, 80년대 들어와서 성격은 물론 인종마저 다른 주인공들을 차용하여 만든 영화들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48시간>, <리쎌 웨폰>, 심지어는 흑인과 아시아인이 짝을 이룬 <러시 아워>) 이제는 서로 출신 계급이 다른 (귀족계급, 그리고 노동계급 출신이라도 뛰어난 자질을 가진, 영국 보수주의의 시조 에드먼드 버크가 주장한 바 있었던 이른바 "타고난 귀족"의 조화.) 두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킹스맨의 화려한 의상과 신사용 악세서리 또한 눈길을 끄는 요소다. (여담이지만 브레몽 같은 비싸기만 한 근본없는 브랜드는 좀 그렇다. 발자크 소설에도 나오는 브레게 정도라면 모를까) 


존 버거는 신사의 정장이야말로 하나의 규범이 되어 계급 패권을 각인시키는 좋은 예라고 했는데, 이 영화에서 선전되는 영국 새빌로 거리의 비스포크 수트를 입은 첩보원들과 힙하퍼 스타일의 악당 간의 대비는 이런 버거의 주장을 확실히 뒷받침하는 것 같다. 그래도 거리에서 멋진 수트와 퐁파두르 헤어를 한 신사가 가래침을 뱉고 지나가는 상놈들 공화국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이렇게 우산으로라도 때려서라도 신사의 법도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인구를 줄여서 지구 온난화를 줄이겠다는, 어찌 보면 상당히 극악한 접근법이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얘기만은 아님을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이런 극악한 주장을 일삼는 자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의류 브랜드 "에스프리"의 창립자 덕 톰킨스로, 인구의 감소를 통해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자며 "딥 에콜로지 재단"을 설립해 가열찬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쨋든 정치적으로는 나와 맞지 않지만 이런 상업 오락영화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 또한 오버가 아닐까 싶다. 정말로 잘 만든 오락영화.

(★★★)



시간이 없어 이만 줄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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