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덩케르크 (2017)
탁월하다. 매우 영국적인 영화다. 그리고 교묘한 선전 영화다. 윈스턴 처칠의 연설문 구절처럼 이 영화는 육지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싸우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통해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묻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 세편을 떠올렸다. 첫번째는 <매드맥스>, 매드맥스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대사가 아닌 인물들의 행위를 통해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매드맥스의 주제의식이 순전한 도락이라면,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아마 영국인다운 애국이 아닐까? 두번째는 <라쇼몽>, 라쇼몽처럼 이 영화도 각 인물들의 행위를 분절해서 보여준다. 다만 라쇼몽이 인물과 사고의 불일치를 드러낸다면 이 영화에서는 집요한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데 사용된다. 그 다음에 떠오른 영화는 악명높은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 예술의 본령은 현실을 보다 잘 깨닫게 만드는 역할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내게 이 영화는 잘 만들수록 불쾌한 영화다. 물론 같은 제국주의 맹우이자 라이벌인 프랑스를 딛고 일어서서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숭고한 모습이야 <덩케르크>라는 제목에 어울리기야 하겠지만, 영국이 그 동안 저지른 역사적 범죄들은 군인과 민간인을 가지리 않는 숭고한 희생 속에 실종된다. 이 영화에서 대단함이란 한국 영화에서 멱살 잡고 울부짖어야 할 대목에서 연출에서나 연기에서나 뛰어난 자제력을 보여주었다는 점과 모범적인 선전 영화의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잘 만들었다. 그래서 너무 짜증난다. (****)
2. 바더 마인호프 (2008)
'좌경맹동주의 활극.' 냉전기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내게도 좀 버거운 주제였다. 모든 영화가 다 그렇겠지만, 특히 이런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영화에서 제작진의 고심은 많을 것이다. 다만 드러나지 않을 뿐. 바더 마인호프의 테러를 현실감 있게 보여주자니 메시지가 실종된 오락 영화처럼 될 것이고, 메시지에 치중하자니 관객들을 극도의 지루함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오시마 나기사의 <일본의 밤과 안개>가 정확히 이런 영화 아니던가!) 당시에 정치적 한계도 잘 형상화했고 이 둘 사이에서 어렵사리 균형을 잡아가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테러가 좌파정치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 무지한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통쾌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영화 소개란에 실린 "봐라! 좌파들이 얼마나 헛된 꿈을 꾸고 있는가! 그 실천은 얼마나 무모한 행위인가!" 류의 단평들을 보면, 역사적으로 무지하거나 자신의 이익에 맞게 아전인수격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오해를 정당화해주는 영화처럼 느껴질 것이다. 반대로 나는 이 영화가 좀 아쉬운데, 그들이 테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정세가 소략되니, 실천에 대한 강박만 남는다는 느낌에서 그랬다. 아니, 어쩌면 바더 마인호프 그룹에서 그런 '절박함'이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정부주의자들에게는 그저 사회혼란을 야기하고 공포를 조성하는 행위 자체가 혁명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니 말이다. 굉장히 잘 만든 영화이고 민감한 주제를 쉽게 다뤘다. 다만 민감한 주제를 쉽게 다룸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교훈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역사를 잘못 읽은 자들'을 스크린에 옮겨 놓으니 또한 (반대의 결이기는 하지만) '역사를 잘못 읽은 자'들이 환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3. 조커 (2019)
한때는 옛날 영화를 많이 봤다. 항상 트렌드는 나와 함께 하며, 미지의 영역은 과거에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나이가 들었는지 아니면 옛날 영화는 볼만큼 봤다는 생각에서인지 요즘 나오는 영화에 더 주목하게 된다. 원래 히어로물은 잘 보지 않는데, <다크 나이트>이후 리얼리티가 부가되면서 현실 세계의 은유로 받아들이게 된 다음부터는 조금씩 보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 <패트레이버>가 몰고온 리얼리티 충격의 계승자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첫 감상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귀환"이라는 점. 그리고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또한 내가 엄청나게 사랑하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나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과 매우 닮아있다는 점이었다. 로버트 드니로가 출연한 점도 반가웠고. 다만 주연인 호아킨 피닉스와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 성향은 판연하게 달라서, 피닉스가 상황에 따른 표현을 중시한다면 드니로는 철저히 대본과 연습에 따른 연기를 한다고 들었다. 결국 <기생충>이 상을 받았지만, <기생충>이 시대가 원하는 화두를 잘 담아냈고 서구 사람들에게 생경하면서도 보편적인 주제를 제시했기에 더 나은 반응을 이끌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유형의 영화는 이런 것이다. 고독하고 음험한 영화. (*****)
4. 헬나이트 (1981)
의외로 괜찮은 호러 영화. 고딕 호러와 슬래시 호러의 결합. 호러 영화의 악덕은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몇몇 신에서 탁월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 특히 지하 추격 신은 대단하다. (***)
5. 인사이드 잡 (2010)
처음에는 졸다가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 금융 관련 다큐멘터리는 만들기가 어렵다. 피사체가 없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설정 샷, 인터뷰, 자료 CG로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음에도 이 정도로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감독이 관련 공부도 많이 하고 역량이 있는 것도 이유지만, 그만큼 미국의 금융계가 엉망진창이지 않은가, 이 구린내가 풀풀 풍기는 토양이 있었기에 이런 신선한 수확도 있었을 것 같다. 한국의 사정도 이에 못지 않은데, 이런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더 많은 제작자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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