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ca

2020년 영화 목록 - 2.

Baron Samdi 2020. 4. 27. 11:46

6. 칼리토 (1993)

영화를 볼 때만큼은 재미있게 보지만 책에 비해서 스스로 시간 조절이 어렵고 속박된 느낌을 종종 받는다. 게다가 취향마저 기괴해서 <공포의 도시>같은 알려지지 않은 영화는 봤으면서 정작 <E.T>는 안 봤다거나 해서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Down To The Bone의 곡 중에 "Carlito's Way"라는 곡이 있어 한 번 봐야겠다, 생각해놓고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 갱스터 클래식을 이제야 보게 되었는데, 보고 나니 <스카페이스>에 필적할 만한 걸작을 왜 외면하고 살았는지 후회가 된다. <스카페이스>가 쿠바 혁명과 난민이라는 역사적 배경 위에서  (폭군에 가깝지만) 영웅의 부상과 몰락을 그려내는 서사시라면, <칼리토>는 잘 살아보려고 마음을 먹지만 세상사가 꼬여있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국 피카레스크 소설과 닮았다. <미스틱 리버> 같은 데서 보던 숀 펜이 정신 나간 유태인 변호사로 분한 것도 놀랍고, 마지막의 지하철 추격신은 <프렌치 커넥션>에 비견할만하다. 초반의 총격전도 굉장한데, 래퍼 Jay-Z의 "Brooklyn's Finest"의 인트로가 바로 이 총격전에서 나온 대사다. <스카페이스>의 "The World Is Yours"는 다른 래퍼 Nas가 가져갔고 인종은 다르지만 이래저래 래퍼들과 갱스터 영화 간의 관계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

 

7. 미드소마 (2019)

이것은 말이 필요없는 컬트 클래식. 모든 면에서, 특히나 마지막 신에서 내가 매우 좋아하는 <위커 맨>의 영향이 짙다. 양상은 다르지만 <이어도>나 <서바이벌 게임>과도 비슷하다. 셜리 잭슨의 유명한 단편 <제비뽑기>가 이런 포크 호러의 시초일 법한데, 겉으로는 평화롭고 목가적인 환경에서 공동체의 규범을 깨뜨렸거나 단순히 외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결속을 위한 희생양이 된다는 설정은 내가 매우 흥미로워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인터넷 게시판의 귀농 관련 포스팅에서 자주 나오는 영악한 도시 사람과 순박한 시골사람 사이의 반전이 극대화된 형태가 아마도 이런 것일 텐데, 나는 이 주제가 일종의 자연의 복수를 상징한다고 본다. 사람들은 자연에서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고 기대하고자 하는 것을 기대하지만,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게 되면 재앙으로 복수한다는 것. (*****)

 

8. 에너미 라인스 (2002)

적진에 홀로 떨어진 조종사가 천신만고 끝에 귀환한다는 모티브는 영화와 FPS 게임에서 여러번 변주될 정도로 인기가 있지만 이 영화만큼은 타임 킬링 용으로도 시효가 지난 것 같다. 개봉 당시의 감성으로는 세련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보면 뜬금없는 스틸 컷 삽입이라든지 엉성한 CG는 보는 내내 불편하다. 울프 컷, 샤기 컷처럼 당시에만 유효한, 2000년대 초반에나 재미있을 영화다. (**)

 

9. 엔젤 하트 (1989)

미키 루크의 미모가 빛을 발하던 시절에 찍은 영화. 오컬트와 누아르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고 평가받는 윌리엄 요르츠버그의 소설 <폴링 엔젤>을 영화화했다. <메멘토>, <올드보이>가 이 영화를 오마주 했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다 보면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을만한 요소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라스트 신은 <곡성>을 연상하게 만드는데, 한국 감독들이 이 영화의 충격적인 이미지에 많이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자체만 두고 본다면 대중적인 소재이긴 한데, 불친절한 전개 때문에 집중하고 있지 않으면  내용 파악이 어려운 편이다. (아마 삭제된 부분이 많은 버전을 봐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영상과 편집이 지금의 시각에서 봐도 세련되었기에 굳이 오컬트 영화 팬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할 만한 영화다. (***)

 

10. 파수꾼 (2011)

2011년에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심지어 1년 뒤에 찍은 <건축학개론>보다 훨씬 세련된 영화이다. 영상, 각본, 연기 어느 하나 뺄 것이 없다. 소통 대신에 의미없는 욕설만 나열하는 10대 남자아이들의 일상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절제된 음악이 오히려 힘을 발휘한다. 마지막에 기태와 동윤의 투샷에서 기태를 거울에 비친 장면으로 처리하는데 이  거울 신이 소통의 결렬이라는 주제의식의 형상화인 동시에, (거울은 깨어지게 되어 있으므로) 언젠가 파국을 맞게 될 아슬아슬한 두 사람의 관계를 의미한다. 나는 이 신이 매우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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