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위 워 솔저스 (2002)
초반만 하더라도 존 웨인만 안 나왔지 1940년대의 감성과 기법으로 만든 영화로 혹평할 뻔 했으나 후반부로 가면서 전쟁의 참혹함이 집요하게 드러난다. 누군가 리더십의 교과서 같은 영화라고 해서 봤지만, 리더십 보다는 전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을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보수적 시각에서 제작된 영화이고 반전영화로 보이지는 않지만 전쟁을 리얼하게 묘사함으로써 반전영화에 버금가는, 아니 때로는 압도하는 현실성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죽어가면서 '아내와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는 장면은 이제 와서 보면 유치하지만 그 말을 전하는 병사가 60년대 사람임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더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었을까? 리얼리티는 고정불변하는 실재가 아니며, 한 시대의 리얼리티는 다른 시대에서는 과잉된 파토스로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
6. 위드아웃 리모스 (2021)
킬링타임 영화로는 훌륭하다. FPS 게임을 보는 듯한 영화. 톰 클랜시는 <고르고 13>의 사이토 타카오만큼 황당하지는 않지만 미국 밀덕들이 어느 부분에서 열광하는지 알고 있으며 영리하게 활용할 줄 안다. 마치 국제 정세를 잘 알게 된 것만 같은 착각을 주면서. (****)
7. 워털루 (1971)
15,000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했다는 말이 무색치 않게 영국군 방진을 찍은 공중 부감샷과 기병 돌격신, 나폴레옹 친위대가 몰살당하는 신 등, 어마어마한 영화적 장경을 보여준다. 다만 감독인 세르게이 본다르추크는 물량전에 적합한 감독임은 증명했으되, 거장의 면모를 보여주기에는 역량이 모자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중성이 결여되어 흥행에 실패했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반대로, 나는 기병이 모자라 카메라 앞에서 말들을 회전시키면서도 걸작을 뽑아냈던 구로자와 아키라 같은 거장들과 비교해서 본다르추크의 연출 역량이 더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평하고 싶다. 그리스 고전 비극을 구현하려고 했지만 시네마 베리테에 더 가깝게 되어버린 영화. 하지만 극장에서 개봉한다면 한 번쯤은 더 보고 싶을 것 같다. 이런 장엄한 광경은 오로지 지난 세기의 유산으로서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
8. 레드 드래곤 (2002)
<양들의 침묵>만은 못해도 훌륭한 스릴러 영화다. 소설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지만 소설을 안 읽은 사람으로서 정말 재미있게 봤다. 토머스 해리스의 복간된 소설을 읽어봤을 때, <양들의 침묵>은 영화와 소설 모두 걸작이라고 할 만 하지만 <한니발>과 <한니발 라이징>은 형편없는 졸작 같았다. 같은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
9. 트루먼 쇼 (1998)
먼저 감독이 피터 위어라서 놀랐던 영화. 자유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갈망, 결정론에 대한 자유의지의 승리를 그리는 드라마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현실 세태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낙관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을 24시간 노출시키거나 (소셜 미디어) 타인이 만들어놓은 세계에 자발적으로 갇히거나, 더 나아가 잘 짜여진 경로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게임) 행태들이 만연한 것을 보면. 영화는 나쁘지 않으나 인간의 자유는 천부적이고 귀중한 것이라는 이런 류의 메시지는 내게 별로 매력적인 주제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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