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Steve Arrington 인터뷰 - 3

Baron Samdi 2017. 5. 23. 11:43

스티브 애링턴의 인터뷰 마지막 파트입니다. 역시나 거장은 음악을 가리지 않습니다. 스트라빈스키에서 예스,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를 거쳐, 댐 훵크와 플라잉 로터스 같은 비교적 최근의 아티스트들까지 섭렵하는 취향이 놀랍습니다. 애링턴이 어릴 적에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를 오케스트라로 오해하는 대목도 재미있지만 훵크 아티스트가 직접 말해주는 훵크의 정의도 흥미롭습니다. 훵크의 정의에 대해서 본토 흑인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듯 합니다. 제임스 브라운이 처음 시작했고, 베이스와 드럼이 강조된 음악이다, 이 부분이 항상 공통된 내용입니다. 리키 빈센트같은 이들은 이렇게 헤비한 악기의 강조를 놓고 대지의 모신이나 일자의 유출 같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보이는데, 스티브 애링턴은 역시 목사답게 이를 신의 은총 같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훵크를 정신주의적 경향이 바탕이 된 해석에 반대합니다. 좀 더 음악을 잘 알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쓴 제대로 된 훵크 연구서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제가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질문자: 그러면 오늘 좀 더 얘기해 보시죠. 새 앨범을 제작하셨는데요.

애링턴:

질문자: 댐 훵크와 하신 거죠.

애링턴: 댐 훵크요, 물론이죠.

질문자: L.A에서 그 분 작업에 참여하셨는데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땠습니까?

애링턴: 아주 좋았어요. 제가 그리고 대중음악계를 떠나기 전에 쿨 모우 디 Kool Moe Dee란 사람의 <Funke Funke Wisdom>이라는 앨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또 그 전에는 힙합 쪽 일에 참여했죠. Three Times Dope란 친구들이었던 것 같은데요. 제 곡 "Weak At The Knees"를 가지고 하는 작업이어서 저도 힙합 쪽에 뛰어들게 되었죠. 그것도 제 일입니다. 저는 항상 "현대적인 것이라면 뭐든지 뛰어든다."는 지론이 있었어요. 이거 알아요? 저는 "봐라, 힙합하는 친구들이 하는 짓이라곤 (턴테이블의) 페이더를 밀고 놉을 좀 더 돌려보고 이런 짓들 뿐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힙합하는 놈들은 뮤지션도 아니야, 샘플링 같은 짓이라니..." 이런 스타일은 아니라는 거죠. 힙합도 제 일이에요. 좋잖아요. 저기는 네가 가 있을 자리가 아니야, 저게 네 자리지, 이런 얘기는 저와 거리가 멀어요. 대신 제게는 이 턴테이블 돌리는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저는 항상 요즘 것에 빠져들고 싶었어요. 제가 항상 몸담고 있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대중음악에 손 때기 전에도 힙합에는 손을 대고 있었어요. 언더그라운드 신의 힙합 말예요. "나는 메이저 레이블하고만 작업하고 싶어" 이렇게 생각하는 대신,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라스 지 Ras G도 들었었고, 이런저런 사람들의 곡을 들었었죠. 그러다 댐 훵크의 곡에 빠졌죠. 그 친구가 SNS로 "선생님, 제가 훵크를 좀 하고 있고 계속 해보려고 하는데 와서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래서 제가 "좋아요, 같이 해봅시다." 그랬어요. 어쨌든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계속 연구해왔고, 이런 일들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정말 이런 걸 좋아해요. 매들립Madlib의 음악에도 빠져 있었고. 매들립 참 좋아하죠. 플라잉 로터스 Flying Lotus의 곡들도 좋아하고요. 허드슨 모허크 Hudson Mohawke의 음악도 좋지요. 이런 모든 음악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제가 해왔던 일이기도 하고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얘기를 들려드리고 싶군요. 중요한 얘기입니다. 16살 때인가, 콘서트에 갔어요. 핫 튜나 Hot Tuna라는 이름의 밴드였죠. 베이시스트와 기타리스트가 제퍼슨 에어플레인에 있던 사람들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사이드 프로젝트로 핫 튜나라는 밴드를 만든 거죠. 그 밴드에 바이올린 주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파파 존 크리치 Papa John Creach였습니다. 파파 존 크리치는 핫 튜나 멤버들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어요. 멤버들이 20대일때, 파파 존 크리치는 40대였로 보였으니까요. 50대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40대더라고요. 제가 그 사람을 올려다 보면서 생각했죠. "이 사람 봐." 여기 나이 많은 사람이 있다고 치고 여러분이 16살이라고 칩시다. 40살 넘은 사람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솔직해집시다. 그냥 이 양반 늙었구만, 이러겠죠.

(웃음)

파파 존 크리치는 바이올린 연주에 푹 빠져 있었어요. 그걸 보고 제가 이렇게 말했죠. "저 사람 처럼 되고 싶어. 저렇게 하고 싶어.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될 거야." 그렇게 말했을 때가 16살 때이고 지금은 보시다시피요. 이제 57살 먹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요즘 것들을 즐기고 있어요. 그래서 젊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저도 영향을 받았죠. "선생님이 'Just A Touch Of Love"를 만드셨지요?"하고 사람들이 물어와요. "아녜요, 아녜요." 보세요. 제가 맞다면 이 젊은 친구들이 제게 영향을 주었고, 저도 젊은 친구들한테 영향을 주었어요. 이렇게 되어야 맞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여러 분들과 함께 하게 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젊은 여러분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제 작업에 관심이 있으시죠? 좋아요." 저도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도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네, 댐 훵크와 함께 한 작업도 그랬고요. 제가 그랬어요. "함께 해봐요. 친구, 해치우자고."

질문자: 그중 하나만 들어볼까요?

애링턴: 좋습니다.

(Steve Arrington & Dam-Funk - Goin' Hard가 흐르고)

(가사를 따라부르며) "내 훵크에 시련을 안겨보라. 내 역사는 너를 거짓으로 하리니." 아무렴 그렇고 말고.

(웃음)

질문자: 제가 이 협업에서 매료된 점 중 하나는 데이튼의 올드 스쿨 훵크에서 댐 훵크까지 이어진 직계 라인이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었어요.

애링턴: 물론입니다. 댐은 확실히 데이튼 훵크로부터 영향을 받은 친구예요. 그가 해놓은 작업을 보면 흡족한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작업도 좋았어요.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다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저는 그렇게 봐요. 은총이라고. 저는 이 곡 작업에 참가했어요. (노래하며) 다른 방식으로 손을 댔죠. 이 곡은 제가 재작업을 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달라졌습니다. 제가 해놓은 것보다 발성 면에서나 훨씬 더 리드미컬해졌어요. 이런 노래를 쭉 들어왔기 때문에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이런 문화들을 흡수하면서 자라났거든요. 우리가 때로는 자장가 멜로디 같은 것을 듣고 크잖아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흡수하고요. 그러다 여기에 비트를 실어봐야겠어, 이러죠.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런 접근 방식이 이 곡에 나타나 있어요.  

질문자: 그러면 언제 앨범이 나옵니까?

애링턴: 글쎄요. 아마 올 여름에 나올 거예요. 네, 확실해요.

질문자: 계절에 딱 맞춰 나오네요.

애링턴: 네, 네. 당연하죠. 당연하죠.

질문자: 죽이네요. 그러면 아마 몇 가지 질문을 더 드려야 할 텐데요.

청중 1: 그러면 57세가 되셨다니 말인데 요즘은 무슨 술을 드십니까? 이런 질문을 드리려고 한 건 아닌데. 요즘 즐겨 하시는 것들은 어떤 게 있나요?

애링턴: 아, 제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계속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즐거워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있고요. 그리고 더 나은 목표를 위해 제 자신을 채찍질하고 극복하고 있습니다. 오랜 동안 꿈꿔 왔던 소원이 있어요. 제 꿈은 B.B 킹처럼 되는 겁니다. 이제는, 어쩐 이유에선지, 제가 매번 이런 음악을 하려 하면서도 그 분 이름을 떠올린 적은 없어요. 그냥 재미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제 아내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죠. "다른 사람은 누구게?" (마이크 꺼짐) 버디 가이입니다. 이런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사람 이름을 떠올리면서 한 적은 없어요. 제 아내 레슬리입니다. B.B 킹이나 버디 가이처럼 되고 싶어요. 7,80년대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제 목표고 여전히 위대한 음악이잖아요. 저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파파 존 크리치처럼 되고 싶어요. 제가 7,80년대에 했던 것처럼 그렇게 되고 싶어요. 저는 아직도 다음 곡의 좋은 멜로디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다음 곡의 미친 듯한 끝내주는 리듬을 찾고 있어요. 저는 아직도 지금 이 시대의 문화와 젊은이들로부터 배우고 싶고, 또 젊은이들이 제 음악을 들어봐주고 연구하고 이렇게 말해주길 바랍니다. "이봐요. 애링턴 씨, 당신이 내 감성을 일깨워줬어요. 정말 그랬다니까요." 이렇게요. 저는 그래요.

청중 2: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애링턴: 아, 네, 안녕하세요.

청중 2: 먼저, 저는 원래 워싱턴 D.C에서 온 사람이고 제가 자랄 때인 80년대에 슬레이브는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저도 선생님 음악을 좋아하고요. 훵크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실 두 가지 질문을 준비했는데요. 저는 훵크가 느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훵크라는 장르를 설명할 때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아주 본질적인 요소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 두 번째 질문인데요. 선생님은 슬레이브의 정식 멤버가 아니었다고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슬레이브 음악이 꽤 많이 샘플링되었잖아요. 그러면 로열티 문제라든가 비즈니스 측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애링턴: 글쎄요. 우선 두번째 질문부터 답해드리죠. 로열티 문제라, 이건 잘 나옵니다. 왜냐하면 제 이름도 일부 크레딧에 올라와 있고, 실제로 샘플링 문제가 발생하고 음악이 샘플링도 많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저작권 관리자가 개입해서 로열티 배분의 퍼센티지라든가 계약 문제를 해결해주고, 또 그러다 보면 슬레이브나 홀 오브 페임 음악의 샘플링 부분에 대해서 돈이 지급되거든요. 그리고 훵크를 훵크답게 해주는 본질적인 부분이 무어냐는 첫 질문은요, 제가 볼 때 하부 bottom (혹은 토대, 뿌리, 여기에 대한 좋은 역어는 합의가 필요 - 옮긴이) 에 대한 강조입니다. 헤비한 베이스라인과 드럼 말이죠. 소울이 유행하던 시기에는 중간 부분이나 상부가 강조되었죠. 그러니까 멜로디라든가, 코드 진행 부분이 더 강조된 거죠. 60년대나 70년대 초의 음악들, 필라델피아 소울이나 모타운을 들어보시면 잘 구성되어 있죠. 약간 헤비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훵크는 아래를 향해 무식하리만큼 돌진하죠. 제가 생각하는 훵크의 또 다른 요소는 정말로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었던 사람 얘기입니다. 제임스 브라운이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데, 타이트한 그루브와 함께 반복되는 파트가 거듭해서 나타나잖아요. 제임스 브라운이 훵크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훵크는 특정한 사람들, 그러니까 조지 클린턴, 슬라이 스톤, 제임스 브라운과 그들의 음악이 나오던 시기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 분들이 훵크를 창안한 거죠. 그래서 훵크는 정말로, 그리고 훵크를 즐기는 사람들 funksters는 모두 제임스 브라운, 조지 클린턴, 슬라이 스톤의 아이들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이봐, 우리 여기에 한 몫 껴야겠어"라고 할 만한 것을 매우 솔직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었기 때문예요. 그 사람들은 저 아래로부터 말하고자 하는 것을 끌어올리는 능력이 있었어요. 우리가 전체로 포괄할 수 없는 부분을 통합해냈죠. 교회 음악처럼, 키보드 주자는 이런저런 음악을 많이 연주할 뿐이죠. 제임스는 여기서 핵심을 파악해서 (타이트한 리듬을 덧붙이면서) 훵크가 탄생했어요.  

청중 2: 감사합니다.

청중 3: 안녕하세요. 가스펠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혹시 오데타나 마할리아 잭슨이나 앨런 로맥스를 아시는지요. 이런 모든 가스펠 곡들요.

애링턴: 네, 가스펠을 많이 연구했어요. 죄송하지만 마할리아 잭슨이라고 하셨나요?

청중 3:

애링턴: 네, 마할리아 잭슨 좋아하죠. 클라크 시스터즈, 캐런 클라크 쉬어드도 좋아하고, 더 오래된 가스펠도 좋아합니다. 제임스 클리블랜드처럼요. 더 최신의 가스펠은 캐런 클라크 쉬어드의 딸인 키에라가 있죠. 이 사람 이름을 옳게 발음한 것이면 싶은데. 가스펠 음악 좋아합니다. 매스 콰이어(합창 예배 음악)도 좋아하고요. 찬양과 경배 자체를 좋아하니 찬양과 경배 음악도 좋아합니다. 이즈리얼 허튼 Israel Houghton말이죠. 제가 가스펠 음악에 요즘 몰두하면서 보니까 가스펠음악은 다양한 스타일을 점점 더 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네, 가스펠 음악을 많이 연구했죠.

청중 3: 감사합니다.

청중 4: 안녕하세요. 자라면서 저희 부모님께서 "Just A Touch"를 틀어주시곤 했어요. 그래서 그런 음악 만들어주신 데 감사드리고요. 제 질문은 선생님 성장기에 관한 건데요. 항상 음악이 맴돌고 있던 가정에서 성장했다고 하셨는데, 뮤지션이 되지 않으셨다면 무슨 일을 하셨을지요.

애링턴: 제가 야구를 좋아하는데요. 2루수였고 꽤 잘했죠. 타격기술이 좋았고요. 한동안 제가 뭘해야 할지를 두고 갈팡질팡했었어요. 올스타 팀에 들어갔었죠. 제가 있던 리틀 야구 팀에서 타격상도 받았고 그래서 생각을 했었죠. 크면 우리 고장에서 최고의 야구선수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야구를 좋아했어요. 하지만 또 학교 고적대 drill team에도 있었어요. 고적대에서 드럼을 쳤죠. 드럼을 치고 있을 때는 야구 연습이 하고 싶어졌어요. 야구를 할 때는 또 고적대 연습이 하고 싶어졌었고, 그래서 결정을 내려야만 했어요. 결국 음악을 택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거의 한 달간 제게 말을 안 하셨어요. 이러셨거든요. "얘야, 뮤지션이 되면 뜰 수가 없어. 야구는 그렇지 않지." 왜 그런가 하면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 선수셨고 매우 잘하셨기 때문에, 야구를 하면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음악을 하기로 했죠. 그게 제가 보기에 맞는 길 같았어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감성적으로 훵키한 사람이고 훵키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예요. 죽이잖아요.

청중 4: 감사합니다.

청중 5: 네, 안녕하세요. 계속 예스라는 밴드를 언급하시는데요.

애링턴: 예스 (네)

청중 5: 그 사람들로부터 드러머로든, 보컬리스트로든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는지요.

애링턴: 드러머인 빌 브루포드의 스네어 사운드는 정말 최고라서 제가 아주 좋아했어요. 공간감을 활용하는 방식도 그렇고요. 브루포드는 킹 크림슨과도 작업을 했었죠. 저는 빌 브루포드의 모든 연주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예스는 보컬 면에서도 가히 천상의 하모니를 보여줬죠. 그 코드들하며. 제가 조금만 보여드릴게요.

(Yes - The Revealing Science of God을 부르자, 박수)

존 앤더슨의 보컬도 죽여줬죠. 이게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앨범의 첫 곡인데요. 이 순수한 음성에 반해 많이 듣고 따라했죠. 제임스 테일러도 마찬가지였고요. 제임스 테일러의 보컬도 좋아했어요. 노래 자체가 순수하잖아요. 아레사도 역시 순수하고. 저는 이런 순수한, 그러니까 기교가 배제된 이런 목소리를 내는 아티스트들을 좋아해요. 그런 사람들은 금방 알아볼 수 있죠. 제게는 예스가 그랬습니다. 특히 브루포드가 밴드에 있을 적에요. 앨런 화이트가 밴드에 들어왔을 때의 예스도 좋아해요. 대단하죠. 그 사람과 함께 한 곡들도 다 좋아합니다. 하지만 브루포드는 공간감이 있었어요. 그리고 브루포드는 훵키했어요. "Roundabout"이나 "Close To The Edge"의 연주를 들어보면, 연주들이 그냥 훵키하잖아요. 그 사람하고 크리스 스콰이어가 제대로 하죠. 그리고 네.......언제나 예스하고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질문자: 계속 하시죠.

애링턴: 그리고 마하비슈누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콘서트에 간 적이 있어요. 오프닝은 커티스 메이필드가 맡았어요. 제가 너무나 좋아하죠. 여기 혹시 커티스 메이필드 팬 있나요? (청중들 속에서 환호) 위대한 커티스 메이필드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 쇼는 콘서트보다 뮤직 페스티벌 같았어요. 프랭크 자파도 나왔고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라는 그룹이 나오는데, 생전 처음 보는 밴드였어요. 그게 72년도예요. 네 72년도 맞아요. 저는 어린애였어요. 16살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는 갖가지 음악을 다 들었죠. 그래서 맞아요. 커티스 메이필드를 보러 간 거기는 하지만, 프랭크 자파가 "Peaches En Regalia"를 연주하는 것도 보고 싶었거든요. 그것도 보러 간 거예요. 그런데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 사람들이 연주를 하는데, 미친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이런 생각이었어요. "오케스트라가 나온다더니만 왜 보면대는 없는 거야?" (정말 오케스트라가 나오는 것으로 착각함 - 옮긴이) 그런 건 없고 어마어마한 드럼 세트만 있더라고요. 빌리 코뱀이 연주를 하는데, 그렇게 큰 드럼 세트는 처음 봤습니다. 등 뒤에는 이렇게 커다란 징 같은 게 걸려 있고. 그래도 "오케스트라는 언제 나오는 거야?" 이런 생각 뿐이었죠. 그랬더니 다섯 사람이 걸어나옵디다. 네 사람이었나? 다섯 사람. 맞아요. 제가 57살이라고 했죠. 가끔은....음 재밌는 얘긴데요. 그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라았어요. 허연 린넨 셔츠 같은 것을 입고 뛰어다니더라고요. 저는 이랬어요. "저 사람들은 오케스트라가 아닌데." 그냥 친구들에게 실없는 말을 했을 뿐인데, 친구놈들이 막 들러붙어 입을 막고 바닥에 쳐박아버리대요. 그리고 본 적도 없는 앨범을 들이미는데, 그게 <Inner Mounting Flame>이라고 "Meeting Of the Spirits"가 첫 곡으로 들어있는 앨범이었죠. 그 사람들이 무지막지하게 연주를 시작하는데, 그런 건 생전에 본 적이 없었어요. 콘서트장에서 나와 이렇게 말했죠. "나 연습실에 들어가서 드럼을 좀 쳐봐야 되겠어." 그런 건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했었죠. "뭐 이리 해괴한 박자에 인도놈들 음악 같은 게 있나." 하지만 그런 게 제가 콜트레인에게 빠져버린 이유였어요. 마일즈 데이비스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고. 그 분들은 제게 큰 충격을 안겨줬어요. 그래서 음악의 힘을 깨닫게 된 겁니다. 정말 큰 충격을 받은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게 내게 충격을 주다니 이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분명해." 진짜, 정말이라니까요. 음악에 대한 제 생각이 혁명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제 영혼 깊숙히 감동을 주었지요. 그래서 음악을 하는 데 두려움이 없이 영적인 탐구를 계속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존 매클러플린과 빌리 코뱀, 얀 해머 (마하비슈누의 멤버들 - 옮긴이) 같은 사람들, 바이올린의 제리 굿맨, 베이스의 릭 레이어드 이런 사람들이 제 인생을 바꿨어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인생을 바꾼 음악을 접해보신 분 있나요? 그냥 들이파는 게 아니라 인생을 바꿔버린 음악요.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바꾼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네, 네, 좋아요. 그러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실 거예요. 여러분을 환장하게 만들고 돌아버리게 하고 뒤집어 놓는 그런 음악 말예요. 아주 뿅 가게 만들어버리죠.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아주 조각조각 아작내는 거. 그래서 여러분 눈은 여기에, 머리는 저기에 있게 만드는 거. 그 분들이 제게 그런 경험을 안겨 줬어요. 저는 완전히 박살났어요. 분자 하나 하나로 헤쳐 놓은 것처럼요. 제가 그렇게 박살이 났어요. 제가 처음 스티비 원더 노래를 들었을 때 경험과 비슷합니다. 그때도 그랬어요. "저기 하나님이 계심이 분명해." 제 말은 음악이 여러분에게 이런 감동을 안겨준다는 거예요. 네, 맞아요. 그래서 지금이 너무 즐겁네요. (웃음)

(우렁찬 박수)

세상에나.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처음 들었을 때도 똑같았어요. 그때도 저는 (소리 지르며) "우와, 미치겠다." 네 음악은 강력합니다. 순수한 음악은 여러분을 스타 트렉에 나오는 광선처럼 갈가리 분해해버릴 거예요.

(웃음)

좋습니다. 좋아요.

질문자: 음, 다른 질문 드려볼까요? 좋아요. 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음악에 대해 더 좋은 말씀이 없으시다면요. 저희야 하루 종일 들어도 좋을 것 같지만 말이죠.

애링턴: 뭐, 이런 말씀을 더 드리고 싶어요. 그저 모든 분들에게는 자기 만의 음악이 있어요. 제가 다양한 스타일에 관심이 있고, 요즘 음악이나 그런 것들도 챙겨듣는다고 말씀드렸을 때, 한 가지 스타일이나 두어 개의 스타일에 좀 더 푹 빠져 있는 그런 사람들을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이런 얘기를 하면 누가 저를 때릴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이름을 언급하는 게 온당한지도 모르겠지만요. 행크 윌리엄스 (미국의 컨트리 가수 - 옮긴이) 말입니다.

(웃음)

곰곰이 제 말을 잘 생각해보세요. 행크 윌리엄스의 프레이징은 대단했어요. 행크 윌리엄스의 음악이 순수하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자체로 순수한 겁니다. 하지만 "난 컨트리 음악은 그냥 그래."라든가 "요즘 음악은 그저 그래."라고 떠들어대는 사람 얘기는 관심 없습니다. "아, 이런 거 별로야."라고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런 건 제가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여러분처럼 젊은 나이에는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도 좋습니다. 젊음이란 그저 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순간예요. 젊음이 지나가더라도 그런 걸 잘 흡수하세요. 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거 아세요? 이런 얘기를 더 하고 싶어요. "왜 허구헌 날 리듬을 타고 있냐? 왜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하는 거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뭔가 느낌이 오고,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하세요. 잊지 마세요. 뭔가 느낌이 오면 그냥 느끼세요. 그렇기 때문에 저도 남들 신경을 안쓰고요. 그루브를 탑니다. 이 그루브가 어디서 나오는가를 궁금해하면서 말이죠. 왜냐하면 제 몸이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 말이죠. 댐 훵크의 그루브는 슬레이브나 다른 훵크 밴드의 그루브와는 다르고 제 바디 랭귀지도 다르죠. 마이클 잭슨은 온몸으로 그걸 표현할 수 있었어요. 마이클 잭슨이 대부분의 곡들을 그런 느낌으로 해석해서 여러분은 그의 몸짓을 통해 그의 음악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그의 몸짓이 음악을 해석한 것이거든요. 저는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것만 보여주면 된 겁니다.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먹힐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하는대로 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누군가 알아주겠죠.

(웃음)

질문자: 여러분, 스티브 애링턴 씨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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