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iotheca 11

마이클 채넌, <음악 녹음의 역사>.

대중음악과 함께 살아오면서, 수많은 대중음악 관련 서적을 접했지만 나는 이 책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음악관련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보다 속물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 책이 대중음악 분석의 유물론적 기초를 제공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저자인 채넌은 영화나 TV와 같은 영상 매체들에 대한 분석과 담론은 엄청나게 쏟아지면서 20세기의 가장 중심적인 대중문화의 영역 중의 하나인 녹음 음악과 음반 산업에 대한 책은 찾아볼 수 없고, 아티스트들의 신변잡기만이 판을 치고 있는 이상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원제는 , 즉 '반복되는 테이크'인데, 여기서 '반복'과 '테이크'는 녹음이라는 것이 가능하기 이전의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이며, 오로지 '녹음'에 특유한 현상이다. 벤야민은 에서 기술은 ..

"B"ibliotheca 2016.06.25

조셉 폰타나, <거울에 비친 유럽>

조셉 폰타나 저. 김원중 역. . 새물결. 정말 근래에 읽었던 최고의 역사서다. 대중성과 학문적인 깊이라는 일견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를 일거에 화해시키며 내 눈 앞에 등장한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해 "지나가는 이들에게 강제로 쥐어주며 읽히고 싶은" 책이다. 그에 따르면 유럽사란 배제의 역사다. 유럽은 항상 "거울들"을 통해 자신을 정의해왔다. 따라서 각 장은 야만의 거울, 기독교의 거울, 봉건제의 거울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유럽이란 이러한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비추어봄으로써, 그것도 왜곡된 거울의 상을 통해서 "유럽"이라는 하나의 실체를 정의해왔다. 폰타나가 거울을 예로 든 것은 아마도 거울의 특이한 성질 탓이리라.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라. 거울은 당신의 얼굴을 온전히 재현해 낼 것이다. 하지만 ..

"B"ibliotheca 2016.06.25

데이비드 에드워즈, 데이비드 크롬웰, <미디어 렌즈>

데이비드 에드워즈, 데이비드 크롬웰 저. 복진선 역. . 한얼 미디어.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인다. 악마는 우리가 세상의 상식이라고 가정하는 지점에서 한 발짝만 물러서면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가장 존경받는 기자가 가장 노예 같은 처지에 있다는 것이 정보원에 의존한 취재의 고통스런 아이러니이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정보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기자들 스스로가 그 정보원들에게 유용해야 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미디어 비평단체 "미디어 렌즈"가 펴낸 책으로 원제는 이다. 그리고 이 권력의 수호자들이란 영국의 주류 언론들을 가리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수준있는 독자들을 겨냥하고 진보적인 논조를 견지한다는 , 그리고 지의 위선을 폭로하고 있다. 미디어 렌..

"B"ibliotheca 2016.06.25

헤로도토스, <역사> 외

헤로도토스 저. 박광순 역. . 범우사. 요즘에 와서 고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나의 배움이 체계없이 부유하고 아직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고전에 대한 등한시와 진지함의 결여 때문이리라. 현대 철학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고 알려고자 하는 사람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철학은 근대 철학에, 근대 철학은 그리스 철학에 뿌리를 단단히 박고 있어야 한다. 누구나 들뢰즈를 말하고 아무나 푸코를 들먹일 적에, 나는 "고전으로 되돌아가" 다시금 배움의 지반을 단단히 하고자 한다. 데리다의 말을 빌자면 나 또한 시대착오적인 것의 정치적인 장점을 믿으며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그것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어, 인식의 차원을 확장하고 사건과 사안을 이쪽 저쪽에..

"B"ibliotheca 2016.06.25

랠프 엘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

랠프 엘리슨. . 범한출판사. 눈 속에 내장처럼 흩어진 이분의 가재도구를 보세요. 이분의 일체의 노동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입니까? - 269 페이지 그들은 살고 있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요, 삶의 죽음...대립물의 통일 - 283 페이지 지금까지 그들이 나를 받아들여 준 것은 피부색에 대해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알고 보니 그들에게는 피부색 뿐만 아니라 인간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 하나이면서 다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 493 페이지 "beautifully written but too much violence in it...." 역자가 출판 허가를 얻으려고 미국 공보부에 엽서를 띄우자, 그에 대한 회신의 일부다. 그 당시 미 공보부에서는 미국 ..

"B"ibliotheca 2016.06.25

데이비드 맥랠런. <마르크스의 세계>

데이비드 맥랠런. . 책세상 88년에 나온 절판본으로 헌책 커뮤니티나 헌책방 사이트를 통해서 구할 수 있는 책이다. 맑스나 맑스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책"이었던가 지식 검색이었던가에서 여러가지 입문서를 찾아보았는데 대부분 좋은 책으로 꼽는 책이 바로 뒤프레의 , 오이저만의 . 만델의 그리고 바로 이 책이었다. 원래 저자인 영국 켄트 대학의 맥랠런 교수는 옥스포드 판 의 편집자이자 BBC에서 제작되었던 라는 두 편짜리 다큐멘터리의 자문을 맡았던 사람이다. 다큐가 호평을 받자 책으로 출간할 결심을 하고 자료를 모았던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맑스가 살았던 시기부터 책이 쓰여진 안드로포프 시기의 소련까지 풍부한 자료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오..

"B"ibliotheca 2016.06.25

아프리카 문화연구소.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화론과 근대성>

아프리카 문화 연구소, 이석호 편역. . 동인. 동인에서 아프리카 문화 연구소의 기획 총서를 펴내고 있는데 이 책은 월레 소잉카의 희곡 선집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프란츠 파농이나 반투 스티브 비코와 같은 혁명가에서부터 치누아 아체베를 비롯하여 얼마 전에 내한했던 응구기 와 시옹오같은 문학인 등의 글을 한데 모아 엮었다. 하지만 나는 제목이 이 책에 수록된 모든 글을 대표한다고 보지 않는다. 게다가 논문들도 장마다 각기 상이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관성이 없다. 내 생각에 첫 장에서 파농과 비코, 칼릴과 마즈루이의 글을 다루고 다음 장에서는 아체베와 시옹오의 글을 묶고 중간의 영화, 희곡이론을 삭제했다면 훨씬 좋은 구성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이 책을 읽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구입보다는 도서관에..

"B"ibliotheca 2016.06.25

장 폴 사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자기의 계급을 부정하면서도 그 계급에 의해 이중으로 조건지워진 존재, 대중이 생산해내는 잉여가치에서 봉급과 사례금을 받아감으로써 온 무게를 대중 위에 지탱하고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자기임을 밑에서 위로 일목요연하게 알아보게 될 것이다." "지식인이 만일 자신을 보편적인 것의 수호자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즉시로 특수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보편적 계급으로 간주하고 있던 부르조아지의 낡은 환상에 다시 젖어드는 셈이 되는 것이다." - 본문에서 - 롤랑 바르트가 맑스, 프로이트 등과 함께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담론성의 창시자 중 하나로 치켜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사르트르는 한동안 내게는 관심 밖의 인물이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국내의 사르트르를 소개한 사람들이 사르트르가 ..

"B"ibliotheca 2016.06.25

모리스 메를로-퐁티, <휴머니즘과 폭력>

"폭력을 사용하는 자들에게 폭력을 쓰기를 주저하는 것은 그들과 공모자가 되는 것이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확언컨대, 이 책은 올해 전반기에 읽었던 책 중에서 최고로 좋은 책이다. 그렇다면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내게 좋은 책이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나의 경험이나 사고와 합치되어 저절로 흡족함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 이런 책은 읽을 때는 즐겁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둘째는, "나"라는 강고한 성벽에 스며들어서 인식의 지반을 뒤흔들어 놓고 섬광같은 깨달음으로 나를 후려치고 책이 제기한 문제를 나로 하여금 오래도록 곱씹게 만드는 책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후자가 좋은 책이다. 전자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발견할 뿐이지만 후자는 창을 통해 세계를 보며 그 창을 통해 나오면서 자신을 다시 새롭게 ..

"B"ibliotheca 2016.06.25

역사의 악의

오늘 읽은 이 문단은 정말로 나에게 무한한 감동과 용기와 확신을 주는 것 같다. 당시 정치현실에 대한 그의 언급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2차대전 당시 독일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역사의 방향을 잘못 판단한 애꿎은 희생양으로 미화되거나 그들의 행위가 인간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논리는 비단 저 먼 프랑스의 일만은 아니다. 사실 메를로-퐁티의 글은 어렵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두 달 전부터 제대로 읽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언젠가는 쾨슬러의 책과 모스크바 재판에 관한 자료들과 함께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일독을 권유하는 이유는 그당시의 정치 현실에서 특유하게 개발된 논리들이 현재에 이르..

"B"ibliotheca 2016.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