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갚음 반면 1973년까지 브라운의 개인적 삶은 이미 붕괴되고 있었다. 그는 음악 외적인 압박으로 휘청거리고 있었는데, 6월에는 사랑하는 아들 테디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데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닉슨을 지지하게 되었으며, 국세청the IRS로부터는 450만 달러의 세금을 포탈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했다.(훗날 밝혀진 국세청이 브라운에게 행한 표적 세무 조사는 불법이었지만 그 당시의 브라운에게는 별반 도움이 못되었다.) 브라운은 두 영화(와 는 “프레드 웨슬리 앤드 더 제이비스”의 이름으로 발매가 되기는 했어도 그 해의 최고의 판매고를 올린 제임스 브라운의 앨범이었다. 스티비 원더나 마빈 게이, 혹은 제임스 브라운의 훵크를 사용하는 여타의 뮤지션들이 눈에 띠게 성공을 거둔 반면, 대부는 방송도 타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