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biographica

두 개의 베이징

Baron Samdi 2016. 6. 25. 17:49



3박 4일간 베이징 여행의 기록

베이징은 두 개의 도시다. 부자들의 도시와 빈자들의 도시. 베이징에서 연수를 받은 동생의 말로는 지쉐이탄에서 학생들 시중을 드는 사환은 첸먼조차 가본 일이 없다고 한다. 베이징의 이태원이라고 불리는 산리툰의 마천루 밑에서는 말도 안되는 물건으로 장사를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노숙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모택동 시절의 강력한 대중동원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인간의 소외'같은 철학적 용어를 차치하더라도, 모든 유휴인력이 생산성 향상에 동원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나는 천안문에 걸린 모택동의 사진을 보고 "양두구육(양의 머리를 걸어두고 개고기를 판다)"이라는 중국의 고사를 떠올렸다. 모택동의 머리를 천안문에 걸어두고 자본주의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이 두 '베이징 사람'이 각기 모택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 마디로는 표현하기 힘든 양가감정이 아닐까? 부자들의 베이징에서 모택동은 청말의 양귀처럼 구축해버려야 할 존재이지만, 빈자들의 베이징에서는 다시 재림해야 할 미륵이나 예수같은 존재일 것이다. 이대로 중국의 병폐가 심화되면 중국 민중들은 다시 모택동의 문제의식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제프리 삭스의 신자유주의 처방을 받아든 러시아에서 유아와 노인 사망률이 치솟고 경제가 도탄에 빠지자, 스탈린 향수가 고개를 들었듯이 말이다. (푸코의 표현을 비틀자면 스탈린이 "죽이는 권력이었고 이 삭스탈린(Sachstalin)은 "죽게 내버려 두는 권력"이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역사의 지식을 얻는 사람이라면, 모택동 시기를 참새나 잡고 인민들의 굶어죽는 엄혹한 시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마크 블레처에 따르면 대약진 운동 이전, 중국은 높은 생산성과 평등한 분배라는 사회주의의 딜레마를 해결한 거의 유일무이한 국가였다. 그 다음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국가의 향배가 대약진과 문혁을 불러왔다. 체제의 참혹한 야만마저도 제3세계로 아웃소싱하는 미국과 다르게, 자신의 과오를 오롯이 떠안은 중국. 이 과오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그리고 현재의 과오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인류의 움직임을 그들이 말하는 순리로 이끌어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나는 현재의 중국에서 명과 암을 동시에 본다. 어두운 면이라면 점점 커져만 가는 빈부 격차와 민족 간의 갈등이겠고, 그래도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주요 생산 수단을 국가가 소유하거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혁개방이 시작되었을 당시 모리스 마이스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이 민생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도 이익만 얻을 수 있다면 팔아먹으려는 다른 국가들의 행태와 다른 점이다. 여전히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막는 방벽, 하나의 만리장성으로 기능하고 있다. 국가라는 또 다른 장성이 얼마나 버텨내는가에 따라, 중국은 중화인이 열망해 마지않는 세계제국이 되거나 아니면 전국시대나 청나라 말기처럼 군벌들이 할거하여 민중들을 착취하는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중국에 대한 감상을 간결하게 정리하자면 이러저러한 문제를 떠안고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동양 문명의 발상지이자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전히 한국과 일본에서 중국을 야만의 시각으로 보는 경향도 많이 존재하고 나 역시도 그러한 편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3천년 역사의 제국이고 아시아판 헬레니즘의 발상지였으며 동방의 로마다. 모든 아시아 국가의 문화와 과학기술은 중국에 빚지고 있음에도, 대다수의 아시아 사람들은 중국을 야만적이고 낙후한 나라로 보고 있다. 서구의 지식인들이 소련을 보는 시선처럼 말이다.

서구인들은 소련을 사회주의 국가라서 두려워했다기보다는 슬라브인, 그것도 엄청난 인구를 가진 이민족이라서 두려워했던 것 같다. 서구의 아무리 진보적인 사회주의 인사라도 슬라브인에 대한 종족적 편견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중국의 시선도 "이념의 문제"(사회주의)와 "인종의 문제"(중국인, 짱깨)를 혼동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장제스가 홍군을 물리치고 전 중국을 장악했더라도 우리의 편견이 사라졌을까? 국공내전 당시 국가 차원의 통제가 가능하고 화폐가 안정적으로 수급된 지역은 홍군 점령 지역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유념해 보더라도 이 부분은 좀 더 생각해 볼 문제다. 대강 내가 파악하고 정의내리고 있는 중국의 문제는 인종이 아니라 "인구"의 문제다. 더 나아가서는 이 "인구"를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느냐 하는, 다시금 "이념"이 문제가 될 것이다.

 

(201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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