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iotheca

장 폴 사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Baron Samdi 2016. 6. 25. 21:38

"자기의 계급을 부정하면서도 그 계급에 의해 이중으로 조건지워진 존재, 대중이 생산해내는 잉여가치에서 봉급과 사례금을 받아감으로써 온 무게를 대중 위에 지탱하고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자기임을 밑에서 위로 일목요연하게 알아보게 될 것이다."

"지식인이 만일 자신을 보편적인 것의 수호자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즉시로 특수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보편적 계급으로 간주하고 있던 부르조아지의 낡은 환상에 다시 젖어드는 셈이 되는 것이다."

- 본문에서 -


롤랑 바르트가 맑스, 프로이트 등과 함께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담론성의 창시자 중 하나로 치켜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사르트르는 한동안 내게는 관심 밖의 인물이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국내의 사르트르를 소개한 사람들이 사르트르가 무엇을 말했는가를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대신에 트렌치 코트와 파이프를 흉내내기에 정신없었기에 (어떻게 이 글을 읽고도!) 그들에 대한 경멸이 자연스레 사르트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몇 년 전 내 미비한 독해력에도 불구하고 집어든 책이 하필이면 <존재와 무>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무슨 사안이건 단순한 생각으로 편견의 구덩이를 파놓고 결국 그 속에 내가 들어가 앉아있게 되는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르트르는 뭐 철학적인 면에서 떨어지고....", "실존철학은 유행이 지나서..."라고 한다면 이제 나는 자신있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사르트르를 읽어보았나? 읽어보았다면 그 내용을 그가 처한 상황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았나?" 라고.

 

예비군 훈련 동안 건빵 주머니에 넣기 쉬운 사이즈라는 이유로 들고 나갔던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르트르의 재발견"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사르트르가 일본에서 행한 강의의 원고다. 100페이지도 안될 만큼 짧은 분량이지만 지식인이 무엇이고 지식인의 책무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그리고 사르트르의 평생에 걸친 투쟁에 대해 이 책보다 간명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사르트르는 지식인과 지식기술자를 구분한다. 지식인이란 인류의 보편적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태어났으면서도 특정 계급의 이권과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의식"을 지닌 인간이다. 그리고 이들은 지식기술자와 매한가지로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항상 주어진 문제를 구체적인 수준에서 파악하고 실천하는 인간,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지식기술자와 구별된다. (사르트르는 구체적으로 "맑시즘"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지식인은 항상 피지배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면서도 피지배계급 자신이 될 수는 없다. 지식인들은 피지배계급으로부터 편취한 잉여가치를 통해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지식인이 노동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하더라도 고등 교육을 받고 거기서 주입된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에서는 다시 자신의 계급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르트르가 말한 바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지식인이 출현하는 것은 오로지 "혁명"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지식인은 자신에게 지워진 책무를 알고 자신의 온 무게를 지탱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현재 학교를 철새처럼 옮겨다니는 시간 강사들의 고된 삶은 프롤레타리아 지식인의 출현이 굳이 혁명에 빚지지 않고도 가능함을 보여준다. 씁쓸한 얘기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강의는 우파뿐만 아니라 프랑스 공산당 내에서도 희화화되었다. 푸코는 사르트르를 일컬어 "19세기의 위대한 철학자"라고 조롱했으며 데리다는 이렇게 철학적 역량이 부족한 학자가 엄청난 대중의 인기를 구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했다고 한다. 나는 사르트르가 "철학적인 면에는 메를로 퐁티에 미치지 못하고, 역사에 대한 통찰력에는 레이몽 아롱에 미치지 못하며 작가적 역량은 카뮈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를 그의 삶에서 찾고 싶다. 그의 사상이 단순해보인다면 그의 삶이 단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피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해 참여할 때를 놓친 바르트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바르트는 이 점에서 항상 사르트르를 높이 평가했다.) 항상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는 카랑카랑한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높이 평가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프랑스 민중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결집점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이번 프랑스 CPE투쟁에서 학생 대표가 나와 "100만이 아니면 200만도"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사르트르의 덕택이 아니었을까? 

 

또한 내가 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고등사범학교 출신이라는 성공과 출세의 보증수표를 내버리고 철저한 야인의 삶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로써 지식인이 무엇인가를 체현했고 보통 사람의 경지를 넘어설 수 있었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으며, 피로를 감내하는 부단한 노력만이 그 정상에 설 수 있다."는 단순한 얘기가 수학 정석의 저자 홍성대가 할 때와 <자본론> 프랑스어 판 서문에서 맑스가 할 때,  그 두 목소리의 울림이 다른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이번 <한겨레 21>에 "김세진, 이재호 분신 21주기" 기사가 실렸다. 그들의 시대에는 중산층 가정 출신이면서 굴지의 명문대생들이 제 한 몸 돌보지 않고 뛰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기사 뒤면에는 학내에서 증오를 조장하는 민노당과 "다함께"는 나가라는 고대 게시판의 얘기도 함께 실렸다. 어찌 고대 뿐이랴! 또 한번 씁쓸해진다. (나는 운동권도 아니고 참여적인 사람도 아니지만 대학 내에 팽배한 순진한 비폭력주의나 반지성주의 그리고 반권 정서는 매우 경계한다. 특히 역설적이게도 학문의 요람에서 나타나는 반지성주의적 경향은 그 사고의 초딩스러움에서 한탄스러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건대 그렇게 폭력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토양을 마련해 준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시대에 그들이 보인 그러한 행동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나라면 그 자리에 서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제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어쩌면 우리는 빚더미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2006/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