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513

Baron Samdi 와 나

우연히 어떤 분이 "사적인 글"이라고 부끄러워하면서 음식과 살아온 삶에 대해 글을 올린 것을 보게 되었다. http://hertravel.egloos.com/5729936 나는 그 글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것도 근래에 읽은 블로그 글 중에서 가장 좋았다. 서로 교차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이쪽의 삶과 저쪽의 삶이 갑작스레 부대끼면서 청량한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다 할까. 우연한, 또는 우연치 않게 맞닥뜨리는 이러한 삶의 공명이야말로 공감의 위력이며, 더 나아가 문학의 원초적인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면서도 사적인 글이라 부끄럽다는 글쓴이의 겸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씀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블로그를 하면서 거의 사적인 얘기를 꺼내지 않는 편이다. 싸이월드에 몇몇 지인들과 일기를 공유할 뿐..

"A"utobiographica 2016.06.25

Long live the crusders!

2008 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크루세이더즈가 내한했다. 전성기의 멤버는 키보드의 조 샘플, 색소폰의 윌튼 펠더뿐이었지만 (얼마전 패트리스 러섄의 내한처럼) 의 레이 파커 주니어까지 합세해서 기쁨이 더 했다. 공연 몇 주 전서부터는 아무리 회사업무가 바빠도 이번 공연은 놓치지 않겠노라고 공언해왔고 를 맨 귀로 들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고 생각해오던터라 기대도 컸다. 공연 후 소감은 단 한 마디로 족하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 가장 듣고 싶었던 , 그리고 원래 리스트에 올라있었던 가 빠져서 아쉬웠지만 조 샘플, 윌튼 펠더 그리고 레이 파커와 같은 거장들의 연주를 지척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공연이었다. 은 꼭 연주할 것이라 예상했었고 신곡 위주의 선곡이 아닐까 우려도 했지만 ..

"A"utobiographica 2016.06.25

Baron Samdi

바롱 쌈디는 바롱 싸메디, 바원 쌈디 등으로 불리는 부두 교의 주술사를 일컫는 말이다. 바롱은 Baron 쌈디는 Saturday, 이 토요일의 남작은 검은 실크햇과 턱시도을 입고, 얼굴에는 해골을 그리고 다니며 좀비들을 깨워 부린다고 한다. 허나 그는 거창한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좀비들을 이용할 뿐이다. 마치 바롱 쌈디가 좀비들을 깨워 내듯이 나의 고유한 목소리로 대중 문화의 거대한 흐름에서 잊혀지고 스러져 가는 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는 것, 그래서 그것들에게 여기에서 잠시라도 죽은 생명이나마 건네주는 것이 내가 블로그를 연 이유다

"A"utobiographica 2016.06.25

R.I.P Maurice White (1941~2016)

대개 뮤지션들의 부고는 귀찮아서라도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는 편이지만 모리스 화이트의 부고는 뭐라도 한 마디 덧붙여야겠다. 왜냐하면 모리스 화이트야말로 20여년 전, 아무 생각없이 살던 초딩 하나를 훵크의 열락으로 이끄신 분이기에 그렇다. 그의 동생인 버딘 화이트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부고를 시작으로 소울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매체들과 소셜 미디어에 그의 사망을 애도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버딘 화이트가 밝혔듯이, 모리스 화이트는 음악 작업에서는 그야말로 "투철한 완벽주의자"였다. 아마 그의 사망 원인인 파킨슨 병도 어찌 보면 음악에 대한 과도한 열정과 몰입,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흑인들은 흥이 많아서 음악을 잘한다"고들 하는데, 내 생각에 이 말만큼 인종주의적이고 ..

"F"unkatology 2016.06.25

르로이 버지스 인터뷰 -2

스튜어트 씨나 러셀 씨하고는 의논한 겁니까? 먼저 우리 부모님과 상의했어요. 아무래도 제 후원자시니까요. 그리고 그 다음에 스튜어트와 러셀을 찾아갔어요. 처음에는 안 믿더라고요. 제가 진심임을 알게 되니까, 부다에 남자고 설득하려고 하더군요. 하지만 떠나고자 하는 제 의지가 굳건했습니다. 그 친구들과 함께 해서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어요. 밴드를 떠나서는 별다른 계획이 있었습니까? 1977년에 밴드를 떠나고 나서 일 년 남짓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곡을 쓰기 시작했고 블랙 아이보리에서 벗어나서 제 첫 번째 히트곡을 쓸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다시 패트릭 애덤스와 함께 하게 되면서부터죠. 패트릭은 뮤지크 Musique 같은 그룹들과 디스코 신에서 많은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

"F"unkatology 2016.06.25

르로이 버지스 인터뷰 -1

나는 ‘빠심’이 없는 편이다. 참을성이 없는 성정 때문인지 음악을 앨범 위주로 듣지 않고 귀에 들어오는 싱글 위주로 듣는다. 특정한 아티스트에 쉽사리 매료되지 않고, 이 아티스트, 저 아티스트를 기웃거리며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한 아티스트의 전곡을 구비하는 일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데오다토, 오하이오 출신의 훵크 밴드 슬레이브와 바로 이 르로이 버지스 Leroy Burgess가 될 것이다. 르로이 버지스는 ‘갓 오브 부기’ 혹은 ‘킹 오브 부기’로 불리며 수많은 DJ들과 언더그라운드 디스코 팬의 숭배를 받아왔다. 얼마 전에는 50명의 DJ들이 뽑은 최고의 아티스트로 뽑히기도 했다. 르로이 버지스 곡의 매력은 청중을 몰아지경으로 몰아가는, 그 중독성 있는 특유의 사운드일 것..

"F"unkatology 2016.06.25

길 스캇 헤론 (Gil Scott-Heron) 인터뷰 - 2

길 스캇 헤론이 사망하기 전, 지의 피터 시슨과 가진 인터뷰를 번역해봤다. 길 스캇 헤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뮤지션이라기보다는 좌파 지식인의 인터뷰 내용 같기도 하다. 살아온 삶에 대한 내용도 재미있지만 힙합의 아버지, 랩의 대부로 꼽히는 사람이 현대 힙합에 대한 견해를 조금이나마 밝혔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인터뷰다. 번역은 빨리 했으나 오역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 점을 양지하시고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링컨 대학 시절에 브라이언 잭슨이나 미드나잇 밴드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는 어떻게 만났습니까? 당시 저는 빅터 브라운이라고 하는 보컬리스트와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요. 우리는 캠퍼스의 커피 숍 같은 데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했어요. 하루는 연습실에서 그 친구를 위해 곡을 쓰고 있었는데요. 브라이언은 우리..

"F"unkatology 2016.06.25

길 스캇 헤론 (Gil Scott-Heron) 인터뷰

길 스캇 헤론 인터뷰 마지막 시인. 피터 시슨 길 스캇 헤론은 어리석은 얘기를 곱게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오후 뉴욕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걸려온 전화로, 이 61세의 작가 겸 아티스트는 지난 40년간 시와 소설과 노래 가사를 통해 보여준 바와 같은 유머와 독설과 통찰력을 결합하여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그와 힙합이 어떠한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요새 힙합은 모릅니다. 다만 개개인으로서의 래퍼만을 알뿐이죠.” 곧 출간될 그의 책 (The Last Holiday)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려 하자, 그는 현재 628번째 페이지를 쓰고 있으며 페이지 하나하나 얘기하고 싶지만 독자들이 직접 읽게 하고 싶다고 했다. 대화가 끝날 무렵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 DNA를 빼놓고는 전부 털..

"F"unkatology 2016.06.25

쉬크 (CHIC)의 나일 로저스 (Nile Rodgers) 인터뷰 (마지막)

시스터 슬레지, 우리는 가족.  우리는 목록을 쭉 훑어보다 시스터 슬레지를 발견했어요.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어요. 작고 예쁜 음반을 하나 낸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유명하지는 않았어요. 대중성이 없었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바로 자리에 앉아서 쉬크를 디자인했듯이, 시스터 슬레지를 손보기로 결정했습니다. “We Are Family”, “He’s the Greatest Dancer”, “Thinking of You”를 썼고요. 이 첫 음반으로 결국 그 친구들의 경력을 손봐준 거죠. 보세요. 캐시 슬레지는 16살이었는데 우리는 버피 운동을 의식해서 슬레지 자매들에게 세련된 젊은 흑인 여성이 되도록 했습니다. 너희들은 이제 다른 여성들이 꿈꾸던 것처럼 화려한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요. 그랬더니 우리..

"F"unkatology 2016.06.25

쉬크 (CHIC)의 나일 로저스 (Nile Rodgers) 인터뷰 (5부)

인 : 맞습니다. 녹음한 이후로는 곡을 못 들어봤다고 하셨잖아요? 나 : 스튜디오 안에서만 들어봤을 뿐이죠. 그런데 클럽에 가니까 다들 제 노래를 아는 것처럼 따라 부르더라고요. 댄스 플로어 위에서 노래를 즐기던 사람들이 제가 누군지 알게 되자마자 공짜 술을 사주었습니다. 그날의 주인공이 된 셈이죠. 우리는 몇몇 인맥을 동원해서 레코드 계약을 맺어보려고 했습니다. “자, 와서 보세요. 이 상황을. 사람들이 우리 음악에 반응을 보이고 있잖아요.” 이렇게요. 이런 일이 매일 밤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Everybody Dance’의 녹음을 마쳤을 때, 이 DJ 친구가 2장을 가져간 게 그 길이가 8분 30초 정도였거든요. 스튜디오에서 듣고 다시 노래를 듣게 되었을 때, 그 친구는 이 곡만 한 시간 ..

"F"unkatology 2016.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