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iotheca

조셉 폰타나, <거울에 비친 유럽>

Baron Samdi 2016. 6. 25. 21:54

조셉 폰타나 저. 김원중 역. <거울에 비친 유럽>. 새물결.

정말 근래에 읽었던 최고의 역사서다. 대중성과 학문적인 깊이라는 일견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를 일거에 화해시키며 내 눈 앞에 등장한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해 "지나가는 이들에게 강제로 쥐어주며 읽히고 싶은" 책이다. 그에 따르면 유럽사란 배제의 역사다. 유럽은 항상 "거울들"을 통해 자신을 정의해왔다. 따라서 각 장은 야만의 거울, 기독교의 거울, 봉건제의 거울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유럽이란 이러한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비추어봄으로써, 그것도 왜곡된 거울의 상을 통해서 "유럽"이라는 하나의 실체를 정의해왔다.

폰타나가 거울을 예로 든 것은 아마도 거울의 특이한 성질 탓이리라.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라. 거울은 당신의 얼굴을 온전히 재현해 낼 것이다. 하지만 거울 본연의 성질은 일면적이고 폐쇄적이고 자아도취적이다. 폰타나에 따르면 유럽의 역사 또한 이와 같다는 것이다. 유럽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책은 뛰어나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이러한 유럽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수정주의는 좌우파 어디에서든 쓰일 수 있는 용어라는 점을 양지하시길, 예를 들어 한국전쟁에 대한 커밍스의 시각과 프랑스 혁명을 바라보는 코반과 리셰의 시각이 같지 않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과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민족주의적 열정이 조응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중요하다 함은 진정으로 우리가 가진 기존의 시각을 교정해준다 (어의 그대로 re-vision)는 점이며 이를 통해서 다시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우리 안의 왜곡된 거울을 바로 잡아 새로운 자아상을 정립시키는 데 이 책의 도움에 빚질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또한 "동양적 가치"라는 낡고 왜곡된 거울을 통해 유럽을 투영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책이 속한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총서는 유럽 5개 출판사가 공동으로 출판하고 있으며 이 책은 스페인의 역사가 조셉 폰타나가 쓴 것으로 총서의 제1권을 구성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역사가이자 폰타나가 연옥의 탄생을 기술할 때 많이 빚지고 있는 자크 르 고프가 서문을 썼고 한국 서양사 연구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최갑수 교수와 주경철 교수의 발문은 이 책의 신뢰도를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이 책의 특장점은 폰타나의 박식이 하나의 줄기로 자연스럽게 수렴된다는 점이며 우리는 이 금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역사를 새로이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에 대해 주저없는 성의를 보일 것을 권한다. 이 책은 내가 접한 서양사 개설서 중에서 독보적이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200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