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ritdefinesse

대중음악 비평의 망상

Baron Samdi 2016. 6. 28. 15:50

좀 더 긴글로 발전시키기 위한 메모

전작처럼 앨범은 숲 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늪지대에서 풍기는 듯한 악취를 내뿜고,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자리 잡은 흉가에서 새나올 법한 신음소리를 흘리며, 굶주린 승냥이떼처럼 청자를 거칠게 위협한다. 각종 음악잡지들이 거의 경배하는 수준으로 모시는 잭 화이트의 천재성은 이 앨범에서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다. 건반 소리는 음습함과 축축한 느낌의 성향을 극대화시키고, 기타는 때로 보컬마저 위협할 기세로 듣는 이의 신경을 자극한다. 습기를 머금은 전체 사운드와 대조적으로 어울리는 퍽퍽한 드러밍은 베이스와 함께 거의 블루스를 듣는 듯한 리듬감을 전달한다.

- 데드 웨더의 음반평 "록 음악 날것 그대로의 미학 보여주는 데드 웨더" 중에서

집에 들어와서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의 데드 웨더 음반평을 읽으면서 리키 빈센트를 떠올렸다. <Funk> 번역은 햇수만으로 만 4년이 되었으나 진도는 지지부진하기 이를 데 없다. 누군가 최훈 작가의 만화 <GM>을 두고서 "내 생애에 엔딩을 볼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것을 보고 내심 뜨끔한 적이 있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Funk>를 번역하면서 그다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문체가 까다롭다. 문체가 까다롭다는 것은 저자인 빈센트가 음악에 대해 광범위하고도 탁월한 식견을 지녔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번역이 까다롭다는 말이다. 원문에 "이 비의에 싸여 있고, 깊이를 모를 듯한 베이스의 장중함은 듣는 자의 실존에 타격을 주고 이제껏 아무도 도달하지 못했던 아프리카적 미학의 심원으로 이끈다."라고 나와 있다면 역자로서는 번역에 앞서 당혹감이 들기 이전에 화가 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그 다음으로 글을 너무 못쓴다. 똑같은 형용사를 두개, 세개 겹쳐서 중복된 표현을 쓰는 것은 다반사이고 세부적인 사실에 있어서도 정확하지 못한 태도로 일관하기에 정확한 데이터를 다른 자료를 통해 보충해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아프리카 중심주의 혹은 극단적인 흑인 민족주의적 태도로 비판받기 이전에 이러한 단어의 오용과 불성실함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정말로 "나쁜 책"이라고 봐야 한다. 나는 이 책에 대한 번역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읽어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훵크라는 장르의 탄생에 대해 보다 정치하게 접근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책은 내가 굉장히 혐오하는 음악 비평의 양식을 모두 갖추고 있는데, 이는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비단 빈센트의 글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흑인 음악 커뮤니티에서 70년대 소울 음악을 소개할 때는 꼭 "영롱한 펜더 로즈"라는 말이 나오더라는 말이 우스개소리로 나온 적이 있다. 이 말은 공적인 음악 비평계에선는 더 이상 우스개소리가 아닌데, 그 예가 이 이대희 기자의 데드웨더 평이 아닌가 한다. 그에 따르면 데드 웨더의 음악은 '흉가'같고 '승냥이' 같으며 '천재인 동시에 음습하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흉가와 승냥이와 천재가 데드 웨더의 음악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주어와 술어의 이반이 나타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는 5,60년대 음반사들의 선전문구인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소울 팬이라면 필청의", "넘버 원 사운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소위 이 비평가들이 언어의 가장 빈약한 범주로 불리는 형용사에 기대어서 비평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 욕지기를 느낀다. "데드 웨더는 흉가다, 왜 음습하니까" 나는 이렇듯 많은 말을 하면서 정작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비평이 지속되는 이유는 단 하나, 아무런 지시대상도 갖지 않는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의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평은 이러한 특성 앞에서 나타나는 좌절의 표현이다. 문제는 이러한 것을 좌절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오함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무책임하지만 왜 음악의 특성에서 이러한 비평이 나타나며, 어떻게 이러한 비평 양식에서 벗어날 것인가는 나중에 부기하기로 한다. 음반 발매 연도와 밴드 멤버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차라리 진실하지 않은가?)

 

(20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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