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ritdefinesse

재즈에 대한 간단한 메모

Baron Samdi 2016. 6. 28. 15:52

재즈의 신봉자들은 그것이 근원적이고 통제되지 않은 본성의 분출, 혹은 낡은 문화재들에 대한 승리라고 오해하는 성향을 띤다. 물론 재즈의 아프리카적 요소들에 대해 의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속의 통제되지 않은 모든 요소는 처음부터 오히려 엄격한 도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점, 또 반항의 제스처에는 맹목적 복종의 태세가 따라다녔고, 그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는 부친 이미지에 반항하면서도 은밀히 그것을 선망하고 그것과 경쟁하고 싶어하며 증오해온 종속관계를 다시 향유하는 사도 마조히즘 유형에 대해 분석 심리학이 말해주는 바와도 같다.

T. 아도르노 <초시대적 유행> 중에서....


 

"재즈를 모르는 자"로서, "재즈의 미래를 보지 못한 자"로서 아도르노는 클래식에 대한 옹호로 대변되는, 그리고 그를 속박하고 있는 서구 중심주의라는 한계를 안고서도 오히려 재즈의 열렬한 예찬자이자 또 다른 맑스주의자인 홉스봄보다 재즈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이 대목을 아도르노의 한계이자 탁월함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첫째로, 그가 아르놀트 쇤베르크에 관한 에세이에서 표현했던 바와 같이, "전통의 과즙에서 자양분을 얻는 것만이 전통과 진정으로 대립할 수 있다."고 찬미했던 음악이 재즈에 와서는 부친 이미지에 대한 사도 마조히즘적 반응으로 폄훼된다는 것이다. 즉, 그의 비판은 재즈와 여타 장르 간의 대별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인데, 이는 다음에서도 반복된다. 그는 쇤베르크의 음악이 여가와 노동을 양분하는 통례를 위반하는 적극적인 청취를 요구한다고 한다. 만약 그가 비밥에서 포스트밥과 프리재즈로 이어지는 재즈의 계보를 끝까지 주목했다면 어떨까? 불행히도 그가 재즈에 대해 글을 쓰던 당시에 목격한 재즈의 발전은 겨우 비밥이 싹을 틔웠지만 소수의 전문가와 지식인의 음악이 되어버리고, 여전히 스윙/ 빅밴드 재즈가 재즈계의 패자로 군림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그는 재즈의 현재는 보았지만 재즈의 미래는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픈 점은 디아스포라의 음악이자 역사적으로 상처입은 자들의 고통의 토로로 낭만화했던 홉스봄과는 달리, 되려 아도르노야말로 재즈의 본질을 포착하는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주지 않았은가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서구고전음악만을 음악으로 인정하는 독일 낭만주의의 사생아이자, 좌파의 혀를 가진 메피스토펠레스가 말이다. 그가 말하는 '체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은 흑인 민족주의자들이 "변화하는 동일자the changing same"이라고 부르는, 재즈 내에서 특정한 작법과 클리셰들이 반복, 재생산되는 것과 이음동의어다. 이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아도르노가 음악적으로 고도의 훈련을 받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체계에 대한 복종은 그가 우려하듯이, 일종의 맹목성을 띤다.


 

소니 롤린스가 70년대에 잠시 재즈 훵크로 외도했을 때 재즈 순혈주의자들은 재즈가 점점 타락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는 재즈가 가져다주는 자유를 신봉하면서도 그 형식적 측면에서는 완고하기 그지없는 재즈광들의 이율배반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재즈 미학에서 이런 이율배반은 쉽사리 무시당해왔다. (일본의 트럼페터 히노 테루마사가 왼손에 트럼펫을 묶고 스스로를 골방에 감금했다는 일화를 보면, 수많은 재즈캣들이 상찬해 마지않은 인종주의적 고난의 승화라든가, 자유를 말하는 음악보다 아도르노가 말했던 '사도-마조히즘적 강박'을 떠올리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대신에 과대포장된 자유의 이상만이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여져 왔으며, 이는 곧 여타 장르에 대한 우월성의 보증수표로 기능했다. 재즈광들이 보여주는 체계에 대한 집요한 고집은 이상스럽게도 그들이 재즈를 말할 때는 자유에 대한 집착으로 이행된다. 그리고 재즈에 나타나는 자유의 이상은 재즈 초심자들을 인도하는 재즈 평론가와 평론가 지망생들, 음반 자본과 미디어의 캐치 프레이즈들을 통해 확산된다. 이렇게 구성된 환상들을 통해서 재즈를 접하는 사람들은 재즈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가장 적합한 음악 형식이라는 점을 도외시하게 되며, 그들이 "자유로운 형식"에 고집스럽게 달라붙을수록 "자유의 실현"과는 점점 더 멀어진다.  

 

(201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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