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biographica

10개의 음반 그리고 3곡

Baron Samdi 2020. 10. 6. 10:45

얼마 전에 도반 Huedsoul님으로부터 릴레이가 왔다. 음악 취향에 영향을 미친 10개의 음반을 뽑아 열흘 동안 올리라고 하는 #10days10albums 릴레이. 내 음악 취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궁금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반가웠지만 과연 10장을 추려낼 수 있을지 난감하기도 했다. 여차저차 앨범들을 뒤적이면서 눈에 띄는 대로 10장을 꼽았는데, Rick Astley, Miami Sound Machine, Petra, Poison, Bobby Brown, Skid Row, Winger, Soundgarden, The Smiths 등등, 한때는 좋아했지만 현재는 듣지 않는 음반들은 제외했었다. (Bobbi Humphrey나 EW&F처럼 정신이 없어 빼놓은 음반도 있고.) 음반 재킷을 올리는 릴레이였기에 별도의 설명은 올리지 않았는데, 뒤늦게라도 모아놓고 보니 나의 음악 비망록 같다. 

 

1. Donald Byrd <Places and Spaces> (1975)

재즈 훵크에 관심은 많았어도 뭘 들어야 할지 몰랐을 때, 파워스테이션에서 구입한 영국 캐슬 레코드의 컴필레이션이 내게는 큰 도움이었다. David Benoit, Crusaders, Herbie Hancock 등 이 분야의 거장이란 거장은 다 모아놓은 앨범이어서 듣고 마음에 드는 앨범을 따로 구입만 하면 되었다. 그 당시 크루세이더스의 <Free As The Wind>와 더불어 가장 좋아했던 앨범. 마이즐 형제의 스카이 하이 프로덕션이 프로듀싱에 참여한 재즈 훵크계의 명반! 매년 가을이면 의례적으로 꺼내 듣는다. 처음 구입한 앨범은 휴대용 CDP(아재 느낌 나나?)으로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혹사하다 보니 어느새 훼손되어서 고이 장례를 치르고 새로 구입해서 현재도 갖고 있다. 들을 때마다 도널드 버드 교수를 만나고자 럿거스 대학까지 찾아갔었던 기억, 그때 맡았던 낙엽의 냄새가 생각난다. 

 

2. Deodato <Prelude> (1973)

CTI의 걸작이자, 데오다토의 이름을 널리 알린 앨범. 좋다는 말을 떠나서 어떻게 인간이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앨범. 다른 앨범을 찾아 들을 때마다 들려오는 괴물같은 연주. 그전에 재즈라고는 "Misty", "Fly Me to The Moon" 등이 들어간 입문용 음반들만 접해왔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 이 음반을 발판 삼아 많은 곡들을 찾아 듣고 재즈 훵크와 재즈에 관심을 가지고 올댓 재즈도 가고 정성조 선생 생전의 라이브도 자주 보고 좋았던 시절이었다. 나의 20대 초반을 규정할 만한 음반. 

 

3. Wham <Make It Big> (1984)

왬에 꽂혔을 때는 8살 무렵이었다. 일전에 블로그에 소개한 아라카와 밴드 (https://baronsamdi.tistory.com/88)와 함께 많이 들었던 음반. 나의 유소년기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온 음반이다. 음반 안에는 CD라는 신매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설명서도 첨부되어있다. 어릴 적부터 어덜트 취향이었는지, "Like A Baby" 같은 곡을 좋아했었다. 지금 한남 5거리 뒤편 죠스 떡볶이 맞은편에 88년부터 영업을 해온 농산물 슈퍼가 있고, 그 옆으로 지물포, 현재 족발집 자리에 '영음 레코드'가 있었다. 다리가 불편하신 사장님이 운영했는데, 처음 카세트테이프를 사러 갈 때 너무도 긴장했었다. 그다음부터는 간이 부었는지 사장님 앞에서 생소한 아티스트를 들먹이며 음악 지식을 과시하던 치기 어린 기억이 있다. 이제 와서 죄송한 마음이지만 너무나 철없던 시절이었기에 잘못된 행동인 줄도 몰랐다. 나를 '팝'의 세계에 빠뜨린 음반. 

 

4. Slave <Stone Jam> (1980)

내게 훵크를 알려준 앨범. 노르딕 메탈 같은 재킷 때문에 구입을 하지 않다가 모든 가이드북에서 꼽는 명반이라 소장이나 해두자는 마음에 구입. 그다음은 20년 넘게 슬레이브의 영적 노예로 살고 있다. 이런 훵크 음반은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음악에는 열린 태도를 취하고 싶지만 이 앨범이 없는 사람은 훵크 팬이 아닐 것, 혹은 정말 하드코어한 훵크 팬일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훵크 팬이라면 필히 구입 소장해야 하는 음반이라고 본다. 

 

5. The Pharcyde <Labcabincalifornia> (1995)

랩이나 힙합을 즐겨 듣지는 않지만 기지촌 아이답게 일찍 접하기는 했다. 처음 접한 랩은 미국 구경 다녀온 친구가 가져온 바닐라 아이스였는데 당시로서는 너무 생소해서 별로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좀 더 커서는 고등학생 치고 영어를 잘해서 (지금과는 다르다. 지금과는) 매주 헤럴드 위크를 구독하고 <XXL>, <VIBE>, <The Source> 등을 명동 중국대사관 앞 수입 잡지 코너나 삼각지 국방부 옆에서 사다 읽기도 했다. (고터 지하에서는 <New Type>과 <Hobby Japan) <VIBE>에서 이 앨범의 광고를 보고 고이 오려서 책장 유리문에 붙여뒀었다. 베이 에이리어 올드스쿨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앨범 중 하나. Warren G나 Digital Underground를 꼽을까도 했는데, 모든 앨범을 좋아하고 현재도 즐겨 듣는 밴드는 파사이드 밖에 없어서 이 음반을 선택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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