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ca

2024년 영화 목록 - 1.

Baron Samdi 2024. 4. 22. 13:11

1. 서울의 봄 (2023)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편집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섬세하고 유장하게 살려주는 극영화보다는 감각적이고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TV다큐나 리얼리티 쇼에 가까운 편집, 아무래도 촬영량이 상영시간을 너무나 초과해서 분량을 줄이려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이게 배우들의 호연과 맞물리니 2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녹아 없어질 지경이었다. 큰  액션 신이 많지 않아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이 넘쳤다. 다만 역사적 맥락을 다 살려내지는 못했고, 워낙 좋은 배우들을 쓰다 보니 <맥베스>나 <리처드 3세>와 같은 의고적인 비극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태신이라는 대비되는 캐릭터가 없었더라면, 오히려 전두광이 카리스마, 지능, 추진력의 3박자를 갖춘 권력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지니면서 현재의 교착상태를 깨뜨리는 실제와는 다른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졌을 것이다. 전두환은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깡패 두목 정도 역할이나 할까, 그 정도는 못 되는 사람이다. 일부 극우세력이 선동하는 바와 같이 <서울의 봄>은 좌파영화일까? 나는 좌파 영화라고 한다면 이런 영웅적인 개인들의 주목하기보다는 왜소한 개인을 높은 곳으로 밀어 올리는 사회적 제력들에 더 주목했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극우세력의 주장은 그들의 뿌리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권력 탈취에만 골몰하는 신군부에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

 

 

2. 파묘 (2024)

오컬트 팬으로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극장에서 조조로 본 영화. 중반부에 갑자기 보훈처 협찬 영화가 되는 등, 애초의 기대에는 크게 못 미쳤으나 이런 영화들은 귀하다. 몇군데 기존 괴담에서 차용한 부분도 보이고, 과한 연출과 마무리가 아쉬웠지만 무속에 기반한 'K-오컬트'라는 전인미답의 영역을 개척하는 데 응원을 보낸다. 평점은 이동진 평론가와 동일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인 애정을 더하여. ****

 

 

3. 보랏 2 (2020)

아마존 프라임 독점 공급작. <리처>, <잭 라이언>을 다보고 헤매다 우연히 발견했다. 재미로는 전작에는 못 미치고, 미국 코미디 영화 특유의 이상한 감동 코드 때문에 갈수록 유치해진다. 후반부에 트럼프의 변호사이자 전 뉴욕 시장인 루돌프 줄리아니가 여성 리포터를 앞세운 몰래카메라에 낚여 바지춤에 손을 넣다 망신을 당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이런 함정 취재가 허용된다니 놀랍다. **

 

 

4. 아메리칸 갱스터 (2007)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 기간이 남아 다시 봤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 있다. 1970년대, 소울과 훵크,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캅 쇼, 르포르타주, 전기 영화적 요소, 역사소설이나 군담소설에서 보이는 적수공권으로 일어선 인물이 세를 규합하며 부상하다가 뜻하지 않은 계기로 몰락하게 된다는 단순한 내러티브. 이 영화는 <에일리언>, <블랙 레인>보다 더 좋아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

 

 

5. 복수는 나의 것 (1979)

봉준호도, 박찬욱도, 나도 좋아하는 영화.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에는 모든 컷에서 생명력이 넘친다. 그리고 모호한 메시지 탓인지, 자꾸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다. 살인 신을 비롯해서 역광에 핸드헬드로 찍은 컷들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보이는데, 오가타 켄과 미쿠니 렌타로의 연기가 보여주는 연극성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다시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이른바 '쇼와' 시대의 자서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선장인 아버지가 나라에 배를 빼앗기면서 주인공이 범죄에 눈을 떴다고 하는데, 이는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되는 니시구치 아키라의 범죄 동기이기도 하다. 감독이 여기에 주목한 이유는 아무래도 쇼와사와 범죄자 에노키즈 이와오의 생애를 유비적으로 구성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쇼와 시대의 고도성장이 익명성을 강화해서 범인의 탈주와 도주를 돕는다는 아이러니도 그렇고. 볼 때마다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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