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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k> 3-22 - 재즈 훵크 퓨전

재즈 훵크 퓨전 : 카멜레온 “재즈는 교사, 훵크는 설교자” 제임스 “블러드” 얼머 재즈와 훵크 1950년대에 흑인 하드밥 Hard Bop 연주자들에 의해서 훵크와 소울은 결합되기 시작했다. 그 두 단어는 날 것 그대로의, 세속적이며, 무엇보다도 비-백인(3장 참조)적인 음악과 스타일을 정의하는 용어였다. 그러한 용어는 60년대 초반 “재즈”라는 말로 용해되었지만, ‘소울’이나 ‘소울 브라더’라는 용어는 1960년대 중반 흑인 대중 음악과 세련된 흑인들을 지칭하는 또 다른 말이었다. 그와 동시에 “훵키해진다”는 말은 1960년대 후반(블랙 파워 운동이 모든 검은 것은 아름답다고 주장했던 시기)이 되기 전까지는 그만큼 시대에 뒤떨어지는 말이었다. 제임스 브라운의 업적을 통해서만이 훵크는 세속적이고 혼을 담..

"F"unkatology 2016.06.24

<Funk> 3-21 - 오제이스

오제이스 에디 레버트Eddie Levert, 월터 윌리엄스Walter Williams, 그리고 윌리엄 파월William Powell(파월은 1977년 새미 스트레인Sammy Strain으로 대체)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가스펠에 기반을 둔 보컬 그룹을 결성했는데, 유명한 디제이 에디 오제이Eddie O'Jay에서 밴드 명을 차용했다. 이 3인조는 갬블과 허프를 따라 필라델피아로 가서 1972년 그들의 명성을 널리 알린 탁월한 앨범 중의 한 곡이자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싱글 “Back Stabber"를 발표했다. 이 곡은 누구라도 들으면 알 법한 귀에 쏙쏙 들어오는 구절을 가진 노래로, 오제이스는 이 곡 "Back Stabber"를 통해서 앞으로의 대성을 알리는 출발점을 얻었다. 매우 도덕적이면서..

"F"unkatology 2016.06.24

<Funk> 3-20 - 필리 사운드

필리 사운드(필라델피아 사운드) 원래 70년대에 소울의 강세가 있기는 했지만, 케니 갬블Kenny Gamble과 리온 허프Leon Huff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널the Philadelphia International'의 음악 제국은 아마도 그 중에서도 으뜸일 것이다. CBS 레코드의 지지와 지원을 통해서 필리 사운드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그 일원은 오제이스, 인트루더스, 빌리 폴 그리고 시어도어 펜더그래스Theodore Pendergrass가 참여한 해롤드 멜빈 앤드 더 블루 노츠, 그리고 물론 전속 밴드인 MFSB(Mother, Father, Sister, Brother)였다. 이 밴드들은 모두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했으며 갬블과 허프의 달콤한 현악 앙상블에 남부 스타일의 거친 보컬을 입힌..

"F"unkatology 2016.06.24

<Funk> 3-19 - 스티비 원더 pt. 2

Innervisions 앨범에서 또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그것(제임스 브라운의 리듬적 기초)이 “He's Misstra Know It All"이나 ”Too High"와 같이 교묘한 사회 비판 곡에서나, 그리고 “Don't You Worry 'Bout a Thing"이나 ”Golden Lady"와 같이 흥겨운 연주에서나 어느 곳에서든 이러한 희비가 엇갈리는 분위기를 보완해 준다는 점이다. 이 음반이 주제 면에서 보여주는 균형은 오로지 소수만이 가능할, 그러면서도 다른 음악인들이 도달해야 할 기준을 마련했다. 이 앨범은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대중 음악상인 그래미상에서 1973년도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가 다음에 발표한 두 장의 앨범 또한 마찬가지였다. Talking Book(1972..

"F"unkatology 2016.06.24

<Funk> 3-18 - 스티비 원더 pt.1

스티비 원더 진정 단 한 사람뿐이었다. 1970년대에 모든 미국 흑인의 모든 음악적 전통이 통합되는 것을 세계로 하여금 목도하게 한 사람은. 스티비 원더(1950년 5월 13일 미시간 주 새지노 출생으로 본명은 스티블랜드 모리스Steveland Morris)는 21세 생일만을 기다려왔다. 왜냐하면 그날이 바로 자신만의 곡을 제작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시점에서부터 자신만의 어법으로 음악의 역사를 다시 썼다. “Signed, Sealed, Delivered"나 ”For Once in My Life"에서 들을 수 있듯이, 60년대 후반까지 스티비는 음악적인 면에서 더 훵키하고 그루브를 타는 느낌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는데 1970년에 와서는 “Do Yourself a Favor..

"F"unkatology 2016.06.24

<Funk> 3-17 - 스위트 훵크

스위트 훵크 “Let's Get It On"의 뒤를 이어서, 1971년에 발표된 빌리 폴Billy Paul의 절묘한 ”Me & Mrs. Jones"나 앨 그린의 훵키한 “Let's Stay Together"와 같은 관능적이면서 세속적인 소울 음악들, 즉 선정적인 창법을 구사하는 남성 가수들이 음악계를 장악했다. 로스 앤젤fp스에서는 프로듀서인 배리 화이트Barry White가 훵크에 아주 거대한 구성을 도입했는데, 모든 미국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어두운 침실로 데려가는 그윽하고 낮은 목소리로 "I'm Gonna Love You Just a Little More, Baby"와 “Never Gonna Give You Up"을 1973년 차트 톱 10에 연달아 올려놓았다. 그는 엄청난 수의 스튜디오 음악가들..

"F"unkatology 2016.06.24

<Funk> 3-16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마빈 게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마빈 게이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모타운에서 실패를 맛본 많은 가수들 중 한 명이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 안에 그의 추종자들조차도 잘 이해하기 힘든 다양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었다. 활기찬 파트너였던 태미 터렐Tammi Terrell의 사망(역자 주 - 유명한 곡 “Ain't No Mountain High Enough"을 마빈 게이와 함께 불렀으며 24세에 뇌종양으로 사망)은 그를 절망 속으로 빠뜨렸으며, 마약과 아버지와의 문제 그리고 모타운의 관악기 연주자들과도 꾸준히 다툼도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 슬픔과 절망 그리고 창조의 시간의 지나자, 게이는 무드와 멜로디, 그리고 씁쓸한 현실이 어울린 걸작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게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었고 새로운 시대를 ..

"F"unkatology 2016.06.24

<Funk> 3-15 - 모타운 pt.2

P-훵크 또한 템테이션즈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많은 P-훵크 콘서트에서 들을 수 있었던 훵카델릭의 고전적인 후렴구인 “wo ha hey"는 Cloud Nine앨범에 수록된 9분짜리 곡 "Runaway Child, Running Wild"의 말미에도 나온다. 그리고 P-훵크의 오리지널 멤버인 에디 헤이즐Eddie Hazel과 빌리 넬슨Billy Nelson 또한 템테이션즈의 1975년 R&B 차트 1위곡 "Shakey Ground"에 연주자로 참여했다. 7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위트필드는 3인조 보컬인 '언디스퓨티드 트루스the Undisputed Truth'를 훵카델릭과 같은 모습인, 아프로 헤어 가발을 쓰고 은빛의 페이스 페인팅을 한 흑인 록 밴드로 키워냈다. 많은 모타운의 세션 연주자들이 정기..

"F"unkatology 2016.06.24

<Funk> 3-14 - 모타운 pt.1

모타운 베리 고디Berry Gordy가 건설한 모타운 제국은 디트로이트의 창고에서 시작되었는데, 레코드 판매가 보증된 대중 영합적인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함으로써, 흑인 자본주의의 화신으로, 흑인들의 성공에 대한 떠오르는 상징이 되었다. 1968년까지 고디의 제국은 미국 내에서 견고하고도 가장 성공적인 활동을 자부해왔다. 이들은 마사 앤드 더 반델라스Martha and the Vandellas, 스모키 로빈슨 앤드 더 미라클스Smokey Robinson and the Miracles, 다이애나 로스 앤드 더 슈프림즈Diana Ross and the Supremes, 주니어 워커 앤드 더 올스타즈Jr. Walker and the All Stars, 템테이션즈, 포 탑스the Four Tops, 잭슨 파이브th..

"F"unkatology 2016.06.24

<Funk> 3-13 - 훵키 소울

10장 훵키 소울 : 자신을 표현하라. “모두 일어나, 훵키 소울을 즐기세요.” - 제임스 브라운 소울과 훵크 소울 음악의 전설은 록 신앙의 만신전pantheon으로부터 자립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주제가 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그리고 1970년대 초기의 소울 음악의 출현은 훵크의 발전에서 아주 주요한 요소다. 모든 사람들의 이상이 소울을 통해 전달됨으로써 과격한 그루브에서 의미심장하고 정제된 사운드로 나타났던 것이다. 소울 음악 가수들과 프로듀서들을 음악적으로 섭렵하지 않고서, 그리고 이를 촉진하는 (만약 흑백 분리가 제대로 되어 있다면) 흑인 라디오의 강력한 하부구조가 없었다면, 훵크는 절대로 치밀하고 접근가능하며, 의미 있는 형태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소울 음악을 생각할 때, 떠오..

"F"unkatology 2016.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