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Funk> 1 - 서문

Baron Samdi 2016. 6. 24. 10:11

(국내에 EBS를 통해 소개되었던 영국 BBC의 6부작 다큐멘터리 <Soul Deep>를 본 사람이라면 미국의 흑인음악 평론가이자 라디오 방송 DJ인 리키 빈센트를 기억할 것이다. 5년 전 미국 체류 중, 훵크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 애를 쓰다가 우연찮게 이 책이 손에 들어왔다. 당시에는 이 책이 훵크에 대해 제대로 소개한 유일무이한 책인지라 기쁨도 컸고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책으로 소개하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흑인사나 흑인들의 저항 운동에 대한 식견이 넓어지면서 이 책이 훵크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점 못지 않게 유해한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스토클리 카마이클 류의 흑인 민족주의나 블랙 파워 운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론적 엄밀성을 결여한 채, 감정적인 수사와 궤변에 가까운 언설로만 일관하고 있다. 어쩌면 헨리 루이스 게이츠가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파시스트들의 소리로밖에 안들린다."고 했던 표현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훵크에 대해 아카데믹한 접근을 시도했다고 자부하는 저자의 변을 듣자면 개탄을 금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훵크에 대한 유일무이한 책이라는 점, 훵크의 태동에서부터 훵크의 현재에 대해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은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일독을 권할 이유가 된다. 비판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어줍잖은 어학 실력이지만 훵크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졸고를 조심스레 내밀어 본다.)

 

머리말.

 

여기 이 책은 라디오나 클럽에서 패기 넘치는 랩 소절을 들어보았거나 몇몇 70년대 훵크 곡들의 특정한 훅이나 리프나 코러스들을 들어왔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옛날의 인기곡들로부터 샘플을 따온 새로운 노래들을 들으면서도 가급적이면, 그 노래의 원곡을 찾아듣거나 연주해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소울의 대부(代父) 제임스 브라운이나, 팔리아먼트 (혹은 훵카델릭),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쿨 앤 더 갱, 어스 윈드 앤 파이어, 오하이오 플레이어즈와 같이 1970년대의 위대한 밴드들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중요한 음원을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엄청나게 훵키한 곡들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던 음악애호가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이 쓰게 된 가장 큰 목적은 이러한 70년대 밴드들이 누군지 알고, 그들을 사랑하면서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음악적으로나 사회적인 움직임으로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들은 단호하게 어둠과 무지 속에 내팽개쳐진 채, 수십 년을 보냈던 음악과 더불어 그 양식과 음원들에 대한 인식의 공백들을 채워나갈 것이다. 소울의 아류로 알려지거나, 질릴 때까지 우려먹거나 혹은 아둔하리만치 대중적인 개념들에 의해 조리돌림 당했던, 그리고 제대로 된 대접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는, 그러나 현재의 미국문화에서 가장 강력한 울림을 가진 그 음악 말이다.

텔레비전은 NBC의 시트콤 <프레이저>에서 "Atomic Dog"을, 유명 신용 카드 선전에서 "For the love of money"를, 제이 리노나 데이빗 레터맨이 나오는 심야 토크 쇼가 막 중간 광고를 시작하려 할 때마다 훵크 음악을 반복해서 틀어준다. 최근까지 <투나잇 쇼>밴드의 리더였으며 스탠다드 팝과 재즈의 상속자였던  브랜포드 마살리스마저 거의 매일 밤을 제임스 브라운의 "Funky drummer"나 쿨 앤 더 갱의 "Jungle boogie"를 연주함으로써 발버둥 치다시피 훵크의 시대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심야 토크 쇼의 가장 뛰어난 연주자인 폴 섀퍼는 조지 클린턴을 숭배하며 훵카델릭의 "Knee deep"과 애버리지 화이트 밴드의 "Pick up the pieces", 슬라이 스톤의 "Thank you" 등을 연주하는 훵크 숭배자a cloned funkateer다. 그리고 예전 심야 토크 쇼 진행자인 아르시니오 홀은 매일 밤 그의 밴드로부터 흘러나오는, 예의 지저분한 그루브에 대한 옹호를 아끼지 않음으로서 훵크에 대한 이러한 움직임들을 한층 더 부추겼다.

물론 이 새로운 경향들의 대부분은 훵크의 아들 뻘이며 보다 도회적인 면모를 지닌 힙합에서 나온 것이다. 변변한 라디오 전파 하나 타지 못했음에도 몇 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랩 음반들을 통해서 훵크 곡들과 훵크 리듬은 갖가지 미디어와 연예 면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프로그램 주제곡, 스포츠 하이라이트, 영화 음악 그리고 앞서 말했다시피 광고 등에서 말이다. 하지만 랩 음악에 나타나는 섹스와 폭력에 대한 논쟁들 속에서, 그리고 플레이버 플레이브, 투팍 혹은 스눕 도기 독과 같은 래퍼들에게서 나타난다고 생각되는 범법자스러운 특성 때문에 하드 코어 랩은 치명적인 낙인을 떠안았다. 훵키한 타악부, 게토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심란한 메아리들이 미국 중산층을 위해 보다 활기차게 포장되었다는 측면이 그들을 주류로 진입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훵크 연주의 원천인 끔찍한 도시의 경험을 도외시한다면 미국인들은 훵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주류는 불과 삼십 여년 전만해도 두려워하기까지 했지만 현재는 조롱받고 희화화된 훵크를 대중적으로 이해하는데 만족한다. 박력이 넘치도록 훵키했던down and dirty 피-훵크, 슬레이브, 붓시스 러버 밴드, 카메오, 바케이스와 같은 밴드들은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누구나 춤출 수 음악을 하는, 보다 "탈-인종적인"음악들 때문에 흑사병처럼 배척받았다. 같은 시기에는, 바로 디스코로 알려진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음악이 매끈하게 차려입은 대중들에게 훵크의 멋지고 매력적인 요소들을 멸균소독한 상태로 공급하기 위해 발명되었다. 그러나 디스코는 현재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반면, 훵크는 미국의 현대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배경막이 되었다. 훵크 특유의 공격적이고, 다채롭고, 발랄하고, 유쾌한 동시에 지저분한 방식으로 말이다.

 

(2006/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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