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104

<Funk> 3-24 - 마일즈 데이비스

마일즈 데이비스 팝 재즈 연주자들이 라디오 방송에 맞게 훵키 댄스 리듬을 가지고 주물러댔던 반면, 마일즈 데이비스는 궤도를 마구 벗어나 재즈의 실제적 정의를 무효화하는 변함없는 힘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그의 60년대 후반 녹음은 새로운 리듬을 추구하는 것이었으며, 더 나아가 임프로비제이션(즉흥성), 전기 기타와 신디사이저, 그리고 다양한 타악적 효과들의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는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음울하고 감상적인 모습으로 종종 록 공연장에서 연주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비평가들이 대부분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마일즈 데이비스가 거리의 리듬, 특히 제임스 브라운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데이비스는 그의 자서전에서 1967년에 듣고 있었던 음악을 거론하고 있다. 내가 ..

"F"unkatology 2016.06.24

<Funk> 3-23 - 재즈 훵크 퓨전 pt 2.

이와 동시에 팝 재즈 퓨전이 걸음마을 시작했는데, 이 스타일은 전통적인 R&B와 (소울 음악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가스펠을 대중적인accessible 형태의 재즈에 가미한 것이거나, 적어도 램지 루이스Ramsey Lewis가 1965년 팝 히트 앨범 In The Crowd를 통해 단초를 제공했고, 멜로디를 부여하는 도구로서 전자 피아노를 두드러지게 사용하는, 흔들기 좋고 춤추기 쉬운 연주 음악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진정 새로운 팝 사운드가 탄생한 것이다. 줄리 코리얼Julie Coryell의 책, Jazz-Rock Fusion의 서문에서 밝히듯이, 램지 루이스는 그의 작품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우리에게 항상 노출되어 있었던 환경의 음악 스타일, 예를 들어 흑인 ..

"F"unkatology 2016.06.24

<Funk> 3-22 - 재즈 훵크 퓨전

재즈 훵크 퓨전 : 카멜레온 “재즈는 교사, 훵크는 설교자” 제임스 “블러드” 얼머 재즈와 훵크 1950년대에 흑인 하드밥 Hard Bop 연주자들에 의해서 훵크와 소울은 결합되기 시작했다. 그 두 단어는 날 것 그대로의, 세속적이며, 무엇보다도 비-백인(3장 참조)적인 음악과 스타일을 정의하는 용어였다. 그러한 용어는 60년대 초반 “재즈”라는 말로 용해되었지만, ‘소울’이나 ‘소울 브라더’라는 용어는 1960년대 중반 흑인 대중 음악과 세련된 흑인들을 지칭하는 또 다른 말이었다. 그와 동시에 “훵키해진다”는 말은 1960년대 후반(블랙 파워 운동이 모든 검은 것은 아름답다고 주장했던 시기)이 되기 전까지는 그만큼 시대에 뒤떨어지는 말이었다. 제임스 브라운의 업적을 통해서만이 훵크는 세속적이고 혼을 담..

"F"unkatology 2016.06.24

<Funk> 3-21 - 오제이스

오제이스 에디 레버트Eddie Levert, 월터 윌리엄스Walter Williams, 그리고 윌리엄 파월William Powell(파월은 1977년 새미 스트레인Sammy Strain으로 대체)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가스펠에 기반을 둔 보컬 그룹을 결성했는데, 유명한 디제이 에디 오제이Eddie O'Jay에서 밴드 명을 차용했다. 이 3인조는 갬블과 허프를 따라 필라델피아로 가서 1972년 그들의 명성을 널리 알린 탁월한 앨범 중의 한 곡이자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싱글 “Back Stabber"를 발표했다. 이 곡은 누구라도 들으면 알 법한 귀에 쏙쏙 들어오는 구절을 가진 노래로, 오제이스는 이 곡 "Back Stabber"를 통해서 앞으로의 대성을 알리는 출발점을 얻었다. 매우 도덕적이면서..

"F"unkatology 2016.06.24

<Funk> 3-20 - 필리 사운드

필리 사운드(필라델피아 사운드) 원래 70년대에 소울의 강세가 있기는 했지만, 케니 갬블Kenny Gamble과 리온 허프Leon Huff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널the Philadelphia International'의 음악 제국은 아마도 그 중에서도 으뜸일 것이다. CBS 레코드의 지지와 지원을 통해서 필리 사운드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그 일원은 오제이스, 인트루더스, 빌리 폴 그리고 시어도어 펜더그래스Theodore Pendergrass가 참여한 해롤드 멜빈 앤드 더 블루 노츠, 그리고 물론 전속 밴드인 MFSB(Mother, Father, Sister, Brother)였다. 이 밴드들은 모두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했으며 갬블과 허프의 달콤한 현악 앙상블에 남부 스타일의 거친 보컬을 입힌..

"F"unkatology 2016.06.24

<Funk> 3-19 - 스티비 원더 pt. 2

Innervisions 앨범에서 또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그것(제임스 브라운의 리듬적 기초)이 “He's Misstra Know It All"이나 ”Too High"와 같이 교묘한 사회 비판 곡에서나, 그리고 “Don't You Worry 'Bout a Thing"이나 ”Golden Lady"와 같이 흥겨운 연주에서나 어느 곳에서든 이러한 희비가 엇갈리는 분위기를 보완해 준다는 점이다. 이 음반이 주제 면에서 보여주는 균형은 오로지 소수만이 가능할, 그러면서도 다른 음악인들이 도달해야 할 기준을 마련했다. 이 앨범은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대중 음악상인 그래미상에서 1973년도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가 다음에 발표한 두 장의 앨범 또한 마찬가지였다. Talking Book(1972..

"F"unkatology 2016.06.24

<Funk> 3-18 - 스티비 원더 pt.1

스티비 원더 진정 단 한 사람뿐이었다. 1970년대에 모든 미국 흑인의 모든 음악적 전통이 통합되는 것을 세계로 하여금 목도하게 한 사람은. 스티비 원더(1950년 5월 13일 미시간 주 새지노 출생으로 본명은 스티블랜드 모리스Steveland Morris)는 21세 생일만을 기다려왔다. 왜냐하면 그날이 바로 자신만의 곡을 제작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시점에서부터 자신만의 어법으로 음악의 역사를 다시 썼다. “Signed, Sealed, Delivered"나 ”For Once in My Life"에서 들을 수 있듯이, 60년대 후반까지 스티비는 음악적인 면에서 더 훵키하고 그루브를 타는 느낌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는데 1970년에 와서는 “Do Yourself a Favor..

"F"unkatology 2016.06.24

<Funk> 3-17 - 스위트 훵크

스위트 훵크 “Let's Get It On"의 뒤를 이어서, 1971년에 발표된 빌리 폴Billy Paul의 절묘한 ”Me & Mrs. Jones"나 앨 그린의 훵키한 “Let's Stay Together"와 같은 관능적이면서 세속적인 소울 음악들, 즉 선정적인 창법을 구사하는 남성 가수들이 음악계를 장악했다. 로스 앤젤fp스에서는 프로듀서인 배리 화이트Barry White가 훵크에 아주 거대한 구성을 도입했는데, 모든 미국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어두운 침실로 데려가는 그윽하고 낮은 목소리로 "I'm Gonna Love You Just a Little More, Baby"와 “Never Gonna Give You Up"을 1973년 차트 톱 10에 연달아 올려놓았다. 그는 엄청난 수의 스튜디오 음악가들..

"F"unkatology 2016.06.24

<Funk> 3-16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마빈 게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마빈 게이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모타운에서 실패를 맛본 많은 가수들 중 한 명이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 안에 그의 추종자들조차도 잘 이해하기 힘든 다양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었다. 활기찬 파트너였던 태미 터렐Tammi Terrell의 사망(역자 주 - 유명한 곡 “Ain't No Mountain High Enough"을 마빈 게이와 함께 불렀으며 24세에 뇌종양으로 사망)은 그를 절망 속으로 빠뜨렸으며, 마약과 아버지와의 문제 그리고 모타운의 관악기 연주자들과도 꾸준히 다툼도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 슬픔과 절망 그리고 창조의 시간의 지나자, 게이는 무드와 멜로디, 그리고 씁쓸한 현실이 어울린 걸작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게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었고 새로운 시대를 ..

"F"unkatology 2016.06.24

<Funk> 3-15 - 모타운 pt.2

P-훵크 또한 템테이션즈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많은 P-훵크 콘서트에서 들을 수 있었던 훵카델릭의 고전적인 후렴구인 “wo ha hey"는 Cloud Nine앨범에 수록된 9분짜리 곡 "Runaway Child, Running Wild"의 말미에도 나온다. 그리고 P-훵크의 오리지널 멤버인 에디 헤이즐Eddie Hazel과 빌리 넬슨Billy Nelson 또한 템테이션즈의 1975년 R&B 차트 1위곡 "Shakey Ground"에 연주자로 참여했다. 7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위트필드는 3인조 보컬인 '언디스퓨티드 트루스the Undisputed Truth'를 훵카델릭과 같은 모습인, 아프로 헤어 가발을 쓰고 은빛의 페이스 페인팅을 한 흑인 록 밴드로 키워냈다. 많은 모타운의 세션 연주자들이 정기..

"F"unkatology 2016.06.24